국제석유시장에서 산유국과 소비국간의 힘겨루기가 본격화할 경우 고공행진을 이어오던 유가는 당분간 하락세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증산 합의에 난항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비축유 추가 방출이라는 카드까지 꺼낼 가능성도 있어 유가 하락압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상품 트레이더들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2차 양적완화 종료를 앞두고 달러화가 강세를 띠고 있는 상황에서 IEA가 비축유 방출을 통해 시장에 원유를 대거 풀 경우 유가가 하락할 수 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골드만 삭스는 IEA의 비축유 방출 결정 이후 브렌트유 가격 전망치를 기존의 배럴당 105~107달러에서 10~12달러 정도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JP모건 체이스도 브렌트유의 올해 3ㆍ4분기 평균 가격을 배럴당 종전 130달러에서 100달러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방출 규모가 역대 최고라는 점도 하락 전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IEA는 1974년 설립된 이후 지난 1991년 걸프전,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재해 등 3차례에 걸쳐 비축유를 방출했는데 이번이 역대 최대 규모다. 과거 1, 2차 방출 당시 국제 유가는 각각 33%, 9% 하락했다. 로이터통신은 "IEA의 방출로 내달 유가 공급량이 전달대비 2.5%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유가가 크게 내려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가를 끌어내리기 위한 IEA의 의지가 어느 때보다도 확고한 점도 하락 전망을 뒷받침한다. IEA는 지난 5월까지만 하더라도 OPEC에 "증산에 나서지 않을 경우 원유 공급을 늘리기 위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 할 것"이라며 구두 경고만 날렸다. 하지만 지난 8일 OPEC이 예상을 뒤엎고 증산을 보류하자 보름만에 전격 행동에 나서는 등 단호하게 대처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시장은 IEA가 친미 성향으로 분류되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증산 합의를 이끌어내도록 시간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전격 방출 결정을 내린 것에 충격에 빠졌다"고 전했다. CNN머니도 "IEA의 태도로 봐서는 추가로 전략비축유를 방출할 수 있다"며 "이 경우 유가는 크게 하락할 것"이라고 전했다. 여기에 내년 대선에 사활을 걸고 있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경기 부양을 위해 IEA에 비축유를 방출하도록 압력을 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IEA는 산유국의 '석유 무기화'를 막기 위해 미국 주도로 설립됐기 때문에 미국의 입김이 막강하다. 다만 비축유 방출이 장기적으로는 유가에 영향을 주지는 않고 국제 원유시장의 불확실성만 높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JP모건은 "예상보다 비축유 방출의 파급력이 클 경우 석유 소비국들이 방출량을 줄이는 등 미온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며 "이 경우 시장에 주는 영향은 예상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마크 잰디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IEA의 깜작 결정으로 투자자들이 당분간 원유 시장에서 빠져나가겠지만 그렇다고 유가가 장기간(Extended time) 하락세를 보일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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