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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국격을 높이자] <2>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

세계 트렌드만 좇으면 '영원한 3류' 못 벗어나<br>포석정→전자레인지등 응용 사례 배울만<br>김치등 韓流열풍 이끌 소프트자원은 풍부<br>'한국적 소재+보편성' 추구해야 일류 가능


외국인 관광객들이 스페인 사라고사 엑스포 한국관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선 가운데 입구를 장식한 한글 자음들이 눈길을 끈다.

“세계적인 한국의 정보기술(IT)은 비디오 아티스트의 선구자 백남준에게 빚지고 있다.” 지난 2006년 벽두 백남준씨가 세상을 등지면서 그를 추모하는 물결 속에 예술계에서 나온 이 말은 IT업계와 언론에서 주목을 받았다. 한국적 정서를 앞세운 이 거장의 작품이 세계적 명성을 떨치면서 한국의 힘이 다시 조명을 받았다. 그는 동시에 “세계 트렌드만 좇아서는 영원히 삼류로 남는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심어줬다. 세계 13대 경제 대국인 한국의 국가위상이 경제력보다 현격하게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본지가 ‘국격을 높이자’ 제언에 앞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우리 국민 10명 중 5명은 ‘다른 나라보다 풍부한 문화자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답했고 10명 가운데 7명 이상이 ‘문화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볼 때 그 이유로 ‘문화수준’을 꼽은 사람은 10명 중 한 명에도 못 미쳤다. ‘우리 것도 안 지키고, 지킬 것도 못 지키는 나라’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누구를 탓할 수도 없이 국보 1호 숭례문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수차례의 전란(戰亂)도 이겨낸 성문이 한순간의 화재에 사라졌다. 2005년에는 산불로 보물 479호인 낙산사 동종이 소실되기도 했다. 겨레의 자랑인 한글은 그 빛을 잃은 지 오래다. 정부는 영어 슬로건 쓰기에 앞장서고 있고 공기업은 경쟁적으로 영어 이름으로 문패를 바꾸고 있다. 새 정부 출범에 앞서 인수위원회가 영어 몰입교육 실시를 시도했다 철회하고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의 ‘오륀지’ 발언에 국민이 ‘뜨악’했던 경험은 어느새 ‘남의 일’이 됐다. 우리 것을 한국인이 지키지 않으니 외국인이 소중히 여길 리 없다. 세계경제포럼은 올해 한국의 여행ㆍ관광경쟁력 순위를 세계 31위로 평했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여행ㆍ관광경쟁력 14위에 오른 홍콩과 비교할 때 우리의 독특한 경쟁력이 될 수 있는 한국 문화유산의 매력을 높이고 세일즈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고 말했다. 이 위원의 말과 일반국민의 인식은 결코 틀리지 않다. 반만년 유구한 역사 속에 생성된 한국의 소프트 자원은 다른 나라를 앞서는 점들이 적지 않아 잘만 활용하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 될 수 있음을 실증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신라시대 왕과 귀족들이 연회장으로 쓰던 포석정의 형상을 응용해 디자인한 전자레인지로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 국내외 시장을 휩쓸었다. GM대우의 전신인 대우자동차는 전통 한옥의 용마루선과 처마선, 한복의 소매선 등을 자동차 디자인에 적용한 중형차 ‘레간자’를 선보여 1997년 말 외환위기에서도 선전했다. 레간자는 국내 우수 디자인상을 휩쓸며 출시하자마자 히트상품 반열에 올랐고 해외 수출도 호조세를 보였다. 정(情)을 모태로 한 한국적 감수성은 ‘한류(韓流) 열풍’을 이끌었다. 드라마 ‘가을동화’와 ‘겨울연가’는 잇따라 일본과 중국ㆍ동남아에서 빅히트했다. 한국 전통 사물놀이를 응용한 난타는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흥행 신기록을 제조했다. ‘빨리빨리’가 상징하듯 새로운 경향에 대한 높은 수용성을 지닌 국민성은 세계 1위의 온라인게임 산업을 창조했다. 전세계 IT업계는 ‘얼리유저(신제품 초기 사용자)’가 넘쳐나는 한국을 ‘테스트베드 마켓(신기술을 맨 먼저 실험ㆍ소개하는 시장)’으로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무엇보다 국가 중대사에 대한 국민적 응집력과 열정은 월드컵 4강 신화와 유조선 침몰로 죽음의 바다가 됐던 태안을 살려내는 기적으로 나타나 세계를 놀라게 했다. 대통령 자문 미래기획위원회의 박대규 과장은 “선진국은 국가 전분야에 걸쳐 일정 수준 이상의 고른 역량을 갖추고 있지만 특히 적어도 하나 이상의 영역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한국적인 장점을 살려야만 우리도 세계 최고를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더욱 확대해줄 위대한 네트워킹 자산을 한국은 보유하고 있다. 학계는 굴곡의 역사 때문에 세계로 흩어진 660만 해외동포가 한국적인 것을 세계적 반열에 올려놓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한국 궁중요리를 소재로 인기를 모은 드라마 ‘대장금’은 한식의 세계화 가능성을 엿보게 했는데 조국애가 강한 미국ㆍ일본ㆍ동남아ㆍ러시아 등의 해외동포들이 김치ㆍ불고기 등 한국 음식의 초기시장을 닦아줬을 뿐 아니라 외국인 홍보에도 팔을 걷어붙였다고 식품업계 관계자들은 전했다. 고정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국격이 높은 소프트 강국으로 가는 첫걸음은 한국적 감성과 문화원형이 깃든 한국의 소프트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라며 “세계 공통의 보편적 감정에 호소하기 전에 한국적 소재로 차별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韓流 가능성 보여준 사라고사 엑스포 엑스포장 찾은 200만명중 40만명이 '한국관' 찾아
한글서체·가무악극등 한국의 전통보며 "원더풀"
스페인 사라고사시가 한류(韓流)로 후끈 달아오르며 현지인들이 한국을 새롭게 보고 있다. 지난 6월14일 '물과 지속 가능한 개발'을 주제로 막을 올린 사라고사 엑스포에서 한국의 미와 멋ㆍ기술을 보여주고 있는 한국관이 현지 엑스포 관계자들뿐 아니라 전세계 관람객들로부터 뜨거운 찬사를 받고 있는 것이다. 사라고사 엑스포 한국관은 지난달 말 기준으로 40만명에 육박하는 관람객이 찾으며 하루 약 1만명의 시민들이 찾는 사라고사 엑스포의 명물로 자리했다. 지금까지 200만명가량이 사라고사 엑스포를 참관한 가운데 한국관이 그중 20% 가까이를 차지했으니 대성공이라 할 만하다. 사라고사 엑스포에는 전세계 104개국이 참가하고 있다. 사라고사를 사로잡은 것은 다름아닌 한국의 미(美)와 역사다. 엑스포 주제에 맞춰 '물과의 대화'를 주제로 연 한국관은 메인 전시공간인 '투영하는 물'에서 '28개의 독'을 선보였다. 관람객들은 독 안에 찬 물에 자신을 투영하며 한국인의 미적 정서를 대리체험했다. 한국관 입구에 전시된 한글 서체들도 관객의 이목을 끌고 있다. 사도세자의 죽음과 혜경궁 홍씨, 정조의 이야기를 현대적 가무악극으로 재구성한 '위대한 왕 정조, 태평성대'는 한국의 날 특별공연으로 채택돼 1,500여명의 관객에게서 갈채를 받았다. 이 현대적 가무악극에서 50여명의 무용수는 정조의 화성행차를 재연해 특히 호평을 받았다. 한국관 밖 야외극장에서는 '난타'가 공연돼 관람객의 열띤 반응 속에 늦은 밤까지 앵콜이 이어졌다. 이곳을 방문했던 이재훈 지식경제부 차관은 "한국의 멋과 기술이 어우러진 '한국관'이 현지에서 큰 호응을 받으면서 한국에 대한 현지인들의 이미지가 크게 개선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실제 엑스포가 개최 중인 스페인 사라곤주의 사라곤 신문은 "사라고사 엑스포에 참가한 국가관 중 한국관은 반드시 방문해야 할 곳"이라고 격찬해 한국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에밀리오 페르난데스 사라고사 엑스포 조직위원장은 "한국의 전통과 특성을 보여주는 한국관이 사라고사 엑스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며 "한국의 위상을 올리는 데도 기여했을 것"이라고 자평했다. 최용태 KOTRA 엑스포 한국관 관장은 "오는 9월14일 폐막까지 사라고사 엑스포에 600만명의 전세계인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중 10% 이상은 한국관을 관람하게 될 것"이라며 "한국적 가치를 앞세운 한국관의 성공이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는 것은 물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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