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굴욕이… 한없이 참담해진 일본
엔저정책에… 일본 국채 위기설 다시 꿈틀아베 집권 후 양적완화 땐경상수지 악화·재정난 우려국채 투매로 이어질 가능성
신경립기자 klsin@sed.co.kr
잊을 만하면 도마 위에 오르는 일본 국채 위기설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오는 12월16일 총선을 거쳐 차기 총리에 오를 가능성이 높은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의 양적완화 정책이 엔화가치와 일본 국채가격에 잔뜩 끼어 있는 거품을 터뜨리는 촉매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 국채 폭락설은 과거에도 수없이 제기돼온 만큼 시장에는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하지만 아베 총재가 촉발한 엔화약세가 경상수지 악화와 재정난 등 일본의 구조적 약점을 건드리면서 국채 투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나리오에 어느 때보다도 힘이 실리는 상황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30일(현지시간) 일본 금융당국이 최근 국채를 대량 보유한 국내 은행들에 금리상승(가격하락)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보유 국채의 만기를 줄이도록 조언했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가 국채시장의 건전성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실제 미쓰이스미토모파이낸셜그룹은 만기 3년 이상인 보유 국채를 2년 이하물로 바꾸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FT는 엔화약세가 국채금리 상승을 초래하면서 11조~12조달러 규모에 달하는 국채시장에 투매의 악순환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헤지펀드업계도 아베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기점으로 일본 국채의 저금리 기조가 마침내 방향을 틀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영국 소재 오드리캐피털의 크리스토퍼 리그는 "아베 총재는 (집권 이후) 일본은행에 보다 적극적인 경기부양을 요구할 것이 자명하다"며 "일본은행이 외국 채권 매입을 통한 양적완화에 나설 경우 일본 국채금리가 2% 정도까지는 오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일본 국채금리가 6~7%까지 급등할 것이라는 비관론자들의 전망에는 못 미치는 완만한 수준이지만 일단 국채금리의 고삐가 풀리면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의 투매로 금리가 더 오르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본 국채를 대부분 국내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다는 점 또한 국채 투매 우려를 불식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지난 1978년에 6.1%의 금리로 발행된 10년물 국채인 일명 '로쿠이치' 국채금리는 재할인율 인상 등의 요인으로 1년여 만에 12%대로 치솟으며 금융기관들에 엄청난 손실을 안긴 바 있다.
과거 조지 소로스의 자문 역할을 맡았던 후지마키재팬의 후지마키 다카시 사장은 경제의 펀더멘털을 감안할 때 "지금 일본 국채에는 엄청난 거품이 끼어 있는 상태"라며 "내년에 1980년대 말 주식 및 부동산 거품이 붕괴된 것처럼 엔화와 국채의 거품이 터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다만 당초 일본은행의 건설국채 매입과 '무제한 양적완화'를 내걸었던 아베 총재가 국내외에서 빗발치는 반대 여론에 부딪쳐 슬그머니 입장을 완화하고 있어 엔저가 더 이상 크게 진전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고조되고 있다. 실제 아베 총재는 이날 기자단과의 회견에서도 "총리가 되면 정책수단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 것"이라며 "수단은 일본은행이 직접 정하면 된다"고 한발 물러섰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투기세력이 최근 엔저를 부추기고 있다며 이들이 차익을 남긴 뒤 엔화 매수로 일제히 돌아서거나 내년에 유로화 위기 재연으로 다시 엔화가 강세를 보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30일 현재 일본의 10년물 국채금리는 0.7040%까지 하락, 2003년 6월27일 이래 9년5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