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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Story] 남궁훈 게임인재단 이사장

게임은 첨단산업 … 저변 넓히고 꿈나무 키우려 회사 떠났죠

한게임 공동창업부터 넷마블·위메이드 대표 등

업계 곳곳 발자취 남기며 게임 1세대 전령사로

게임산업 잠재력 커 규제논리로 접근해선 안돼

영어 못잖게 게임 이해도가 경쟁력 척도 될 것



20년 남짓한 역사의 국내 게임산업에서 남궁훈(42·사진)게임인재단 이사장처럼 이력이 다채로운 인물은 드물다. 그와 함께 일해본 사람들은 개성있는 외모와 패션 못지않게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김정주 넥슨 창업자나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처럼 천문학적인 부를 쌓지는 못했지만 그는 '게임 1세대'의 전령사 노릇을 톡톡히 해왔다. 한게임(현 NHN엔터테인먼트) 공동 창업자로 시작해 NHN 미국법인장, 넷마블 대표, 위메이드 대표 등을 거치며 게임업계 곳곳에 발자취를 남긴 덕분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게임 꿈나무를 육성하고 게임인들의 기를 북돋우겠다며 재단법인을 설립했다. 모두가 염원했지만 아무도 선뜻 나서지 못한 일을 시작했기에 게임업계가 그에게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기업인에서 문화기관 관계자로 변신한 남궁 이사장을 만나 그간의 소회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재단의 향후 계획을 들어봤다.

남궁 이사장의 유년기는 남태평양의 쪽빛 바다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오세아니아의 미국령인 사모아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수산청에 근무했던 아버지가 참치잡이 원양어선을 담당하면서 어쩔 수 없이 전학을 갔다. 언어도 서툴고 문화도 달랐지만 그곳에서의 경험은 훗날 그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사모아섬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이었어요. 엄마와 함께 길을 가던 아이가 저를 보더니 '일본인이다'하며 인사를 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건네려 하자 같이 있던 엄마가 '아니야 한국인이야'라며 마치 가까이해서는 안 될 존재를 본 것처럼 아이 손을 낚아채더군요. 당시는 서울올림픽 전이라 아마 어느 나라에서나 한국의 이미지는 다 비슷했을 겁니다. 어린 마음에 약소국의 서러움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할까요."

집에 돌아온 소년 남궁훈은 그때부터 역사책을 펼쳐보기 시작했다. 왜 일본은 저렇게 부강한데 한국은 그렇지 못할까, 왜 우리나라에는 소니나 파나소닉 같은 글로벌 기업이 없는 걸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머릿속을 맴돌았다. 선생님이 꿈이었던 남궁훈은 장래에 대해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의 경험 덕분에 남들보다 빨리 진로를 결정할 수 있었어요. 한국인이 해외에 나가 설움을 겪지 않으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를 생각해보니 결국 우리나라가 부국이 되는 길밖에 없더군요. 경영학을 전공하면 돈 버는 법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귀국 후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그는 서강대 경영학과에 입학한다. 1학년 첫 여름방학부터 그는 본격적인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든다. 학비와 용돈을 버는 것 못지않게 남들보다 세상을 빨리 알고 싶다는 욕심이 컸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택시 운전과 여행사 가이드였다.

"택시 운전은 차를 워낙 좋아해 도전했고 여행사 가이드는 일하며 공짜로 여행을 다닐 수 있어서 시작했어요. 매번 방학 때마다 둘을 번갈아 하다 보니 적성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택시는 재미는 있는데 너무 힘이 들었어요. 중간에 밥 먹으러 기사식당을 찾으면 손님이 타고 막상 손님을 태우려면 손님이 없더군요. 반면 여행사는 당시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작되면서 활황이었어요. 수시로 단체관광객을 인솔해 김포공항을 드나들었죠. 하지만 같이 여행사 가이드를 했던 한 선배는 매번 똑같은 일을 하는 가이드 업무가 너무 지겹다고 하더군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어떤 직업을 선택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사람에 따라 세상이 달라 보일 수 있다는 것을요."

하지만 남궁 이사장은 대학 졸업을 앞두고도 구체적인 진로를 정하지 못했다. 그때 마침 인터넷 초기 단계였던 PC통신이 등장하면서 그의 인생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온라인을 통해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PC통신과의 인연은 자연스레 직업선택의 고민으로 이어졌다. 재미있으면서 좋아하는 일을 해야 오래 할 수 있다는 나름의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PC통신 서비스 '유니텔'을 운영하던 삼성SDS는 그에게 안성맞춤의 일터였다.

"자동차를 좋아했기에 삼성자동차(현 르노삼성자동차)와 삼성SDS를 놓고 고민이 많았어요. 당시에 두 회사가 도로를 마주보고 있었는데 삼성SDS에 먼저 원서를 접수하고 길을 건너 삼성자동차에 가니 같은 그룹사는 중복 지원이 안 된다고 하더군요. 삼성SDS 입사 후에는 원하던 유니텔사업부에서 기획과 마케팅을 담당했습니다. 하지만 정신없이 업무를 배우고 막 적응할 무렵에 외환위기가 닥쳤습니다. 6개월치 월급을 주면서 명예퇴직을 받았는데 주위를 돌아보니 소위 잘 나가는 선배들은 전부 퇴사하더군요. 딱히 정해놓은 것은 없었지만 그렇게 얼떨결에 회사를 나왔습니다."

부모님의 반대를 뒤로 하고 회사를 그만둔 남궁 이사장은 정부가 운영하는 창업지원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매월 25만원의 운영비를 내면 책상 3개가 달린 작은 사무실을 쓰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양복을 입고 아침에 집을 나왔지만 학교에 가서 후배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잦아졌다. 하지만 그마저도 후배들이 하나둘 학교를 졸업하면서 오래가지 못했다. 그때 삼성SDS 선배였던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게임업체 창업을 제안하면서 그는 게임과 운명적인 인연을 맺는다.

한게임 공동 창업자로 합류한 그는 2년 뒤 네이버컴과의 합병으로 탄생한 NHN으로 자리를 옮겨 승승장구한다. 인도네시아법인 총괄을 시작으로 엔터테인먼트사업부장, 한국게임사업 총괄, 미국법인 최고운영책임자, 미국법인 대표이사를 두루 거치며 경영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했다.

하지만 그는 한게임이 한창 성장가도를 달리던 2008년 9월 NHN 미국법인장을 끝으로 회사를 떠났다.

"10년 정도 게임과 씨름하다 보니 회사는 성장했지만 제 자신은 정체됐다는 고민이 들었습니다. 미국법인에서 근무하던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문득 출근하기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출근을 안 했더니 아무 일도 안 생기더군요. 다음 달 또 무단결근을 해봤는데 역시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회사를 떠날 때가 됐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NHN을 나온 그는 이듬해 CJ E&M 넷마블의 대표로 화려하게 게임업계에 복귀한다. 이어 2012년에는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 대표로 자리를 옮겨 모바일게임 시장의 기틀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위메이드를 돌연 퇴사하고 재단법인 게임인재단 이사장으로 또다시 변신한다.

"게임인재단은 어린 시절 꿈이었던 선생님과 저의 게임 인생을 고민한 결과입니다. 그동안 게임산업은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지만 정작 게임 개발자에 대한 처우는 열악한 것이 현실입니다. 여전히 이사장이라는 호칭이 어색하지만 게임산업 저변확대와 게임 꿈나무 육성에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남궁 이사장은 최근 논란이 되는 정부의 게임산업 규제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게임의 부정적인 요소만 보고 규제 논리로 접근하는 것은 근시안적인 처방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대로 게임 규제가 현실화되면 국내 게임산업은 결국 해외 게임업체의 하청기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게임 규제를 둘러싼 논란은 게임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문제입니다. 과거에는 대상이 만화책이었고 텔레비전이었습니다. 게임업계도 반성해야 합니다. 너무 앞만 보고 달렸지 정작 사회적 책임에는 소홀했으니까요. 하지만 게임은 어느 분야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산업입니다. 게임은 이제 아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산업에 녹아들고 있습니다. 체중계와 스마트폰이 만나면 다이어트 게임이 탄생하는 식입니다."

남궁 이사장은 앞으로 게임이 단순한 엔터테인먼트의 영역을 벗어나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드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른바 모든 산업에 게임의 요소가 접목되는 '게임화(gaimification)'가 머지않았다는 얘기다.

"게임은 이미 신생산업의 지위를 넘어 학문적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앞으로는 영어와 수학 못지않게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얼마나 높은지가 경쟁력의 척도가 될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게임을 즐기고 접하던 아이와 게임을 금기시하고 부정했던 아이 중 누가 미래의 주역이 될 것인가는 자명합니다. 섣부른 게임 규제로 역사를 거스르는 오류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진=김동호기자

● 남궁훈 이사장은

△1973년 서울

△서강대 경영학과

△1997년 삼성SDS 유니텔사업부

△1999년 한게임 공동창업



△2000년 NHN 인도네시아법인 총괄

△2002년 NHN 엔터테인먼트사업부장

△2006년 NHN 한국게임 총괄

△NHN 미국법인 최고운영책임자(COO)

△NHN 미국법인 대표

△2009년 CJ E&M 넷마블 대표

△2012년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 대표

△2013년 게임인재단 이사장

유망 개발사 1000만원 지원… 게임특성화고 설립도 추진

●게임인재단은

"영화인·출판인·언론인이라는 말은 몰라도 게임인이라는 표현은 생소합니다. 한국 게임은 글로벌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 정작 국내에서는 홀대 받고 있기 때문이죠. 우리 게임인들도 이제 충분히 자긍심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남궁훈 이사장이 지난해 11월 설립한 게임인재단은 사실상 국내 게임업계 최초의 민간법인이다. 현재 게임업계에는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옛 한국게임산업협회)와 게임문화재단이 출범했지만 모두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업계 차원의 활동에 주력해왔다. 비영리법인인 게임인재단이 게임업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다.

게임인재단은 철저하게 게임 개발자 지원을 목표로 운영된다. 중소 개발사 지원, 미래 게임인재 발굴을 위한 장학금 운영, 공연·미술·음악 등 다른 문화산업과의 교류가 3대 역점사업이다. 유망 중소 개발사에는 1,000만원의 자금을 우선 지원하고 '카카오톡' 게임 서비스에 무심사로 게임을 출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남궁 이사장의 게임인재단 설립 소식이 전해지자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는 20억원가량의 재단 운영비를 지원했고 NHN엔터테인먼트는 서버와 통신망, 와이디온라인은 고객 서비스 업무를 지원했다.

게임인재단은 우선 '힘내라 게임인상' 등을 통해 게임업계 종사자의 처우개선에 주력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 게임특성화고등학교를 설립해 학교법인의 면모를 갖추겠다는 청사진도 마련했다. 게임에 특화된 교과과정을 제공해 졸업 후 바로 게임업체에 취업하는 산학협동 체제를 구축하고 경쟁력 있는 게임 꿈나무를 조기 발굴하겠다는 게 목표다.

"10만명의 게임인들은 소개팅이나 맞선 자리에 나가도 자랑스럽게 명함을 꺼내지 못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대기업보다 우리 사회와 경제에 공헌하는 부분이 많은데 여전히 사회적 편견이 앞서기 때문이죠. 게임인재단이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게임특성화고등학교가 설립되면 많은 부분이 바뀔 것입니다. 게임은 첨단을 달리는 문화예술 산업입니다. 앞으로는 게임을 잘하면 취직도 잘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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