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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종 다르면 법적문제 없어… "조달시장 반쪽짜리 법 바꿔야"

대·중견기업이 만든 위장중기 정부 공급물량 싹쓸이<br>계열사 통한 우회 지원으로 중기 전용시장 잠식 '땅짚고 헤엄치기'

한정화(오른쪽) 중소기업청장과 민형종 조달청장이 지난달 15일 정부대전청사에서 ‘중소기업 기반 창조경제 조기 구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가 중소기업 조달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관련법 미비로 대·중견기업들의 중기전용 조달시장 뺏기가 여전한 상황이다. /사진제공=중기청


# 삼표그룹은 지난 5월 세종레미콘을 인수했다. 이에 따라 세종레미콘은 모기업인 삼표그룹과 같은 사업을 영위하고 지배 종속 관계에 놓이게 됐다. 중소기업 간 경쟁제품 입찰에 참여할 수 없게 된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세종레미콘은 현재 아무 제재 없이 공공조달시장에 참여 중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삼표그룹이 만든 임대업 전문회사인 유니콘으로부터 공장부지와 건물, 시설 등을 빌리는 편법을 썼기 때문이다. 삼표그룹이 레미콘업을 하고 있지만 삼표그룹 자회사인 임대회사와 계약을 맺어 레미콘 사업을 하는 식으로 판로지원법의 '같은 사업' 규정을 교묘히 회피한 것이다.

# 아주베스틸은 중소기업인 아주그린의 지분을 49% 보유하는 동시에 공장 부지 및 건물, 시설 등을 빌려주고 있다. 아주그린은 아주베스틸과 지배 종속 관계에 있음은 물론 시설도 빌려 쓰고 있어 중소기업 간 경쟁제품 시장에 참여할 수 없는 게 원칙이다.

이 회사는 그러나 세종레미콘처럼 공공조달시장에 지속적으로 물품을 납품하고 있다. 아주베스틸은 강관, 아주그린은 피복강관을 생산, '같은 사업'이 아니라는 게 이유다.

이처럼 세종레미콘ㆍ아주그린 등은 지분관계로 볼 때 명백하게 대ㆍ중견기업 계열사, 또는 관계사로 중소기업기본밥상 중소기업이 아니다. 당연히 중소기업끼리만 경쟁하는 조달시장에서 빠져야 한다.

중소기업에서 제외시키는 관계기업 제도에 비춰봐도 이들 기업은 명백히 중소기업이 아니다. 관계기업제도는 지분비율에 따라 기업 규모를 합산해 중소기업 여부를 판단하는 것으로 규모나 상한 기준상 중소기업에 속해도 중소기업이 아닌 모회사가 있는 경우 관계회사로 판단, 중소기업에서 제외시킨다.

◇반쪽짜리 위장 중기 방지법=이런 위장 중소기업이 버젓이 합법적으로 중기전용 조달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이유는 허술한 반쪽짜리 법 규정 탓이다. 관련법인 '중소기업제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법률(판로지원법)' 8조의2는 '대기업과 같은 종류의 사업을 영위하고 그 대기업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지배 또는 종속 관계에 있는 기업들의 집단에 포함되는 중소기업'에 대해 중소기업 간 경쟁제품 참여를 제한하고 있다.

지배 종속 관계에 있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같은 사업을 하는 경우'만 법 적용을 받도록 한 것이다. 이렇다 보니 삼표의 경우처럼 다른 업종의 계열사를 만들어 이 계열사를 통해 중소기업을 지원하면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게 된다. 이 규정에는 대기업, 또는 중견기업을 등에 업은 중소기업, 즉 위장 중소기업이 사업 분야를 막론하고 일반 중소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월한 경쟁력으로 중기전용 조달시장을 잠식할 수 있게 하는 큰 구멍이 나 있는 셈이다.

◇대기업, 왜 중기 조달 노리나=대(중견)기업의 위장 중기들이 일단 중소기업 간 경쟁시장에 참여하게 되면 앞선 생산능력, 기술력을 기반으로 상대적으로 쉽게 정부 조달계약을 따내게 된다. 중소기업들하고만 경쟁하게 되니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이다. 대기업들이 호시탐탐 중기 조달시장을 노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얼마 전 중소기업청이 퇴출시켰던 업체들만 봐도 그렇다. 중견 가구업체 리바트는 자회사 쏘피체를 차려 중소기업 전용 가구조달시장에 참여했다가 덜미를 잡혔다. 리바트는 판로지원법 개정안이 발의되기 전에 쏘피체를 종업원 지주사로 전환시키는 꼼수를 부려 조달시장에 살아남았다. 쏘피체는 조달시장에서 올 초 세 달 만에 360억원의 물량을 계약하는 등 선두권을 기록하기도 했다. 결국 지난 6월 퇴출당했지만 중소기업 전용 조달시장이 그만큼 대(중견)기업들에 수익이 쏠쏠한 매력적인 시장이 되는 것이다.

중기 조달시장인 중소기업 간 경쟁제품시장 규모는 연 20조원가량. 대기업ㆍ중소기업 구분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일반 조달시장은 이보다 4배인 86조원 규모다.

◇판로지원법 개정 시급=중소업계는 위장 중소기업이 아예 발을 못 붙이도록 근거가 되는 판로지원법을 서둘러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같은 사업을 하는 경우에만 적용하도록 한 반쪽자리 규정으로는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중소기업들을 온전히 보호할 수 없으며 꼼수에 능한 대ㆍ중견기업들만 배 불리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주장이다.

정책 당국인 중기청도 판로지원법의 '같은 사업' 규정은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관련 담당자는 "삼표의 경우 36개 위장 중소기업을 발표할 때만 해도 명단에 포함돼 있었는데 이후 문제제기를 해와 검토해보니 심증은 있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 할 말이 없게 됐다"며 "내부적으로 이견이 있지만 중소기업 간 경쟁제품 제도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도 향후 법 개정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중소업체 관계자는 "자회사나 계열사가 모기업인 대기업과 같은 사업을 하든 말든 모기업의 지원을 받아 더 유리해지는 것이 당연한데 왜 법이 같은 사업만 하는 경우로 한정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현실에 맞지 않는 허술한 법 규정으로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은 여전히 중소기업 간 경쟁시장에서 머물려 하고 있어 우리 같이 규모가 작고 돈 없는 일반 중소기업들은 이들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 간 경쟁제품(중기전용 조달시장)제도=국내에서 직접 생산하는 중소기업이 10개 이상, 공공기관 연간 구매실적이 10억원 이상인 제품에 대해 대기업의 공공시장 조달 참여를 배제하는 제도. 공공기관이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품 구매시 중소기업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제한경쟁 또는 경쟁입찰 방법에 따라 조달계약을 체결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으로 지정기간은 3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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