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 명품과 저가 SPA에 치여 가뜩이나 먹고 살기 힘든데 마지막 숨통인 아웃렛 창구까지 틀어 막으면 패션업체들이 거의 고사하게 돼 결국 국내 토종 패션산업은 몰락의 길을 걸을 겁니다." 중소 토종 패션업체 대표들은 최근 모이기만 하면 백화점의 아웃렛 출점을 규제하면 한국의 패션산업은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성토한다.
A 의류업체 사장은 "소비가 줄어 재고가 많아졌지만 그나마 아웃렛에서 소진하는 바람에 숨통이 트인 상황"이라면서 "백화점 수수료가 30%를 웃도는 반면 아웃렛은 18~19%로 낮은 편이어서 수익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아웃렛은 백화점 이월상품을 50% 이상 싸게 판매해 유명 브랜드 상품을 실속있게 구매하려는 소비자들로부터 인기를 끌면서 급성장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추진 중인 아웃렛 출점 규제가 현실화하면 가뜩이나 위축된 패션산업이 고사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소비 침체 속에 신제품을 사지 않는 소비자가 늘고 있는 가운데 아웃렛은 국내 패션업체의 재고 처리를 위한 생존 채널로 자리 잡은 만큼 유통업체의 아웃렛 출점이 힘들어지면 패션업체들이 설 자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아웃렛 상품의 70~80%가 토종 브랜드임을 감안할 때 아웃렛 규제는 패션업체의 매출 감소로 이어져 해외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힘들게 버티고 있는 국내 패션산업을 벼랑 밑으로 밀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즉 재고 증가와 더불어 현금 확보 능력, 신상품 R&D 및 생산 능력 저하로 기업 경쟁력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결국 해외 브랜드에 밀려 소멸되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는 얘기다. 이런 탓에 패션업체들은 이구동성으로 "아웃렛 규제가 국내 패션산업에 대한 규제나 다름없다"고 통탄한다.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패션산업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국내 패션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여성복의 최근 5년간 신장률은 2010년 14.5%에서 2011년 8.6%, 2012년 5.7%, 2013년 8.7%, 2014년 6.4%로 하락세를 거듭하고 있다. 중산층 붕괴와 맞물려 소비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패션업계도 고가 명품이나 수입 컨템포러리, SPA(제조·유통 일괄) 브랜드로 양극단을 달릴 뿐이다. 손 쓸 수 없을 만큼 회복 불능 국면인 셈이다.
B 의류업체 사장은 "갈수록 어려운 판국에 그나마 전체 매출의 30% 정도가 아웃렛에서 나오고 있어 버티고 있는 실정"이라며 "재고이긴 하지만 백화점에서 팔던 옷을 관리를 잘해 내놓은 것이어서 합리적인 소비를 지향하는 소비자에게도 이익인 셈"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의류업체 규모가 작을수록 아웃렛은 현금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회생 기반이기도 하다. "아웃렛 점포 하나당 5~6억원씩 매출이 발생한다"는
C 의류업체 사장은 "아웃렛 입점 전에는 부도 위기에 직면한 적도 있지만 이제는 현금 회전율이 좋아져 어려운 회사는 아웃렛을 통해 부도 위기를 막아 생존할 수 있고 잘되는 회사는 더 탄탄하게 갈 수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어떤 브랜드들은 아웃렛에 들어간다고 하면 고급 브랜드라는 인식이 있어 고급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신규 론칭부터 아웃렛 입점을 추진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토종 브랜드들이 아웃렛 입점을 마케팅 전략으로도 활용한다는 전언이다.
중소 의류업체들은 아웃렛 규제가 대체 누구를 위한 규제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항변한다. 패션산업은 지역 상권에 미치는 영향이 실제로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대형 아웃렛에 들어가는 토종 브랜드는 가격대가 있어서 전통상점가에서 판매하는 브랜드나 가격 범위가 겹칠 수 없다는 이유다.
A 업체 사장은 "보통 백화점 아웃렛에는 백화점에서 팔던 브랜드가 입점하기 때문에 가격대가 높다"며 "동일 가격과 동일 상품으로 경쟁하는 슈퍼마켓과는 엄연히 다른데 누구를 보호하고 누구와 겹친다는 것인지 정확한 실태 파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아웃렛 규제는 되레 중소 토종 브랜드만 죽이고 저가의 수입 SPA 브랜드만 더 승승장구하게 만들 뿐이라는 지탄의 목소리가 높다. A 업체 사장은 "유니클로야 말로 싼 가격대로 지역 상권과 겹치는 게 아니냐"면서 "오히려 유니클로는 상권 제한도 받지 않고 백화점과 대형마트, 지역상권의 로드숍에서 무제한적, 무차별적 공습으로 토종 브랜드를 사지로 몰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따라 일부 의류업체들은 아웃렛 규제 법안에 대한 국회 논의가 본격할 경우 법안 통과 반대 운동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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