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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121> 예스맨이 친구가 될 수 없는 이유

SBS 월화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의 한 장면. /사진제공=SBS 홈페이지

요즘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명문 사대부 집안의 피를 이어받은 법조계의 맹주 한정호(유준상 분) 변호사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룬 블랙코미디입니다. 주인공 중 한 명0인 한인상(이준 분)은 아버지의 기대와 달리 가난한 여고생 서봄(고아성 분)과 속도위반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상류 계층 사회에서 학습해 왔던 모든 덕목들을 재평가하면서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가정부 아주머니나 집사 역할을 하는 비서, 사법고시 가정 교사가 된 선생님 등과 감정적인 교류를 하게 됩니다. 급기야는 그들이 악조건에서 노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파업을 이끌어 내기도 합니다. 아들 부부가 아버지를 상대로 일으킨 ‘반란’에 대해 한 변호사와 그 부인(유호정 분)은 엄청난 분노를 표시합니다. ‘너희들이 우리가 번 돈을 쓰면서 이럴 수 있느냐’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극 중 한정호 변호사의 말 속에 많은 실마리가 숨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집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가신’이라고 표현합니다. 일종의 주종 관계라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가신은 주군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는 사람입니다. 과거 일본의 봉건 영주들은 자신의 가신에게 목숨을 담보로 한 책임을 묻기도 했습니다. 주군의 영을 거스르면 어두운 골방에서 ‘셋푸쿠’, 즉 배를 갈라 자살하도록 명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한 변호사는 자신이 일하는 사람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여겼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주인으로서 마땅한 권리를 행사하는데, 그에 반발하는 경우에는 징벌해야 한다는 상당히 고리타분한 논리를 갖고 있는 것이죠.

기가 막힌 것은 정황을 잘 모른 채 오랫동안 집안에서 봉사해 온 ‘일하시는 분들’이 자신의 상전과 맺은 계약조건입니다. 이들은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대부분 한정호 가문의 선대부터 봉사해 왔던 이들입니다. 심지어 큰언니가 할머니를 모실 때 뒤따라와서 그 며느리를 모시는 비서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주군에게 ‘예스맨’ 역할을 하는 데 충실해 왔고, 거기에서 자신의 프로페셔널리즘과 가치를 확인했던 이들에게 새로운 계약과 노동 조건을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상 뿌리를 뒤흔드는 일입니다. 애초부터 누군가에게 평등한 입장에서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는데, 새삼스럽게 관계의 프레임을 바꾸자니 난관에 봉착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결국 한 변호사는 자신의 자산을 위탁 관리하고 있는 한트러스트와 깊은 관련이 있는 인물이자 로펌의 비서인 양재화를 시켜 연대한 ‘가신’들을 각개격파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연봉 상승을 조건으로, 누군가에게는 불이익 없이 기존의 지분을 보장해 주는 조건으로 노조에서 탈퇴하게 만드는 겁니다. 결국 외부에서 들어온 며느리인 서봄이 모든 사태를 주도했을 것이라는 의혹 속에서 ‘가신’들은 끝내 자신들의 파업을 중단하고 말았습니다. 자기들 때문에 어린 며느리가 쫓겨날 지 모른다는 공포감과 미안함도 한 몫 했고요.



‘풍문으로 들었소’를 보면서 기자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애초부터 ‘예스맨’으로 자기를 포지셔닝 하는 사람들은 끝까지 친구가 될 수 없다고 말이죠.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려면 쓴 소리, 때에 따라서는 반대 의견을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방을 위해서 고언과 부정을 서슴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만 비로소 대등한 소통이라 할 것입니다. 혹시나 기대되는 이익 때문에, 아니면 누군가의 힘이 두려워서 예스맨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있다면, 그것 자체가 스스로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임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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