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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밖이 내 쉼터" 2030 도심을 떠돌다

주거난이 만든 비자발적 노마드족… 그들이 사는 세상

답답한 원룸은 잠만 자는 공간… 공부·휴식 모두 밖에서

이사 주기 짧은 월세족,고가 브랜드보다 실속가전 구입

'토즈' 등 공간 임대업·중기제품 등 관련 산업군도 활기



대학생 허민우(25)씨는 집보다 집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다. 그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9.9㎡(3평) 남짓한 원룸. 침대와 작은 책상, 미니 냉장고가 들어가면 어른 한 사람이 앉아 있기에도 버거운 공간이다. 채광조차 잘 되지 않는 이곳에서 공부하고 여가를 즐긴다는 건 쉽지 않다. 허씨는 아침에 눈을 뜨면 집 밖으로 나와 자정이 가까워서야 집으로 돌아간다. 학교 수업 외 머무르며 공부하는 데 상당 시간을 쏟는 곳은 도서관과 학교 근처에 있는 한 모임 공간이다. 스터디 카페를 표방한 이곳의 2시간 이용료는 5,000원. 널찍한 공간에서 조용하게 공부하고 음료까지 무료로 즐길 수 있어 허씨는 이곳을 즐겨 찾는다. 그는 "빛 잘 들고 소음 없는 집다운 집을 당장 구할 수 없는 현실에서 잠시나마 누리는 '소박한 사치'"라고 말했다.

팍팍한 삶과 열악한 주거환경을 이유로 허씨처럼 집 밖에서 집 같은 공간을 찾아 떠도는 청년인 '비(非)자발적 노마드족'이 증가하면서 이를 겨냥한 공간 임대 창업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월세·전세 등으로 이사 주기가 짧고 불안정한 주거 환경에 직면한 상당수 청년은 고가 브랜드보다 실속형 가전제품 구매로 눈을 돌리고 있기도 하다. 청년 '노마드족'이 늘면서 이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소비 패턴을 파고든 관련 산업군은 반사이익을 누리며 성장하고 있다.

집·학교를 벗어난 '제3의 공간'에 대한 2030 젊은 세대들의 수요와 맞물려 세를 키우고 있는 것은 토즈와 같은 모임 공간. 5,000원 안팎의 돈을 내면 2∼3시간 정도 개인 공간을 판매·서비스하는 일종의 '초단기 임대업'인 셈이다. 모임 공간 토즈의 연 이용자 수는 지난 2011년 184만7,969명에서 지난해 521만4,153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올해 1∼8월 이용자 수(521만6,670명)만도 지난해 연간 이용자를 웃돌아 올해는 9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토즈는 크게 모임센터·비즈니스센터·스터디센터 등으로 구성돼 있다. 방음시설이 완벽해 음악 관련 스터디 및 모임에 적합하다. 전면이 거울이어서 스튜어디스·아나운서 등의 직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김윤환 토즈 대표는 "취업 준비를 목전에 둔 고학년 대학생들 상당수는 집·도서관을 벗어나 목적에 집중할 수 있는 제3의 공간에 대한 수요가 많다"며 "주변의 눈치 없이 쾌적하고 넓은 공간에서 자신과 목적이 비슷한 사람끼리 한데 어울려 공부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안정감·동질감을 느끼고 꾸준히 찾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집 밖 공간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관련 업체 수도 늘어나고 있다. 24시간 자판기 무인 카페 콘셉트의 '24시 프리카페', 카페 같은 인테리어가 강점인 프랜차이즈형 독서실 '아카데미 라운지' 등 새 업체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집 같은 집 밖 공간은 일·공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마치 내 집 안방처럼 뒹굴며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시간 단위 '초단기 임대업'을 이어가는 곳도 있다. 만화카페 '즐거운 작당'은 1시간에 3,000원만 내면 내 집 안방 마냥 뒹굴거나 편한 자세로 망중한을 즐길 수 있다. 찜질방에 있는 토굴 모양으로 책장 밑에 만들어 놓은 땅굴 안에서 이용객들은 눕거나 벽에 기대앉아 만화를 읽는다. 지난해 9월 문 연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뒷골목의 만화카페 '섬'도 내 집 같은 편안함이 주 무기다. 1시간에 3,000원도 채 되지 않는 비용만 내면 안락하고 널찍한 소파, 침대에서 뒹굴며 여가를 보낼 수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2030 세대들에게 집이라는 것은 잠자는 곳 이상의 의미를 갖기 힘든 것 같다"며 "이제는 집 밖의 공간에서 각자 특화된 공간을 상황에 맞게 시간 단위로 쪼개 사서 즐기는 '노마드족'이 주를 이루고 있는 만큼 집 같은 집 밖 공간을 사고파는 '초단기 공간 임대업' 시장은 더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셋값 상승, 월세족 증가 등으로 이사 주기가 빈번한 청년 노마드족은 각종 생활용품 구매에도 독특한 소비 패턴을 보인다. 경제적 상황에 맞춰 이곳저곳 옮겨다니는 경우가 많은 만큼 파손돼도 부담이 적은 중소기업 제품에 눈을 돌리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 11번가에 따르면 올해 1월1일부터 8월18일까지 중소 브랜드 TV 매출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31% 성장했다. 삼성전자·LG전자 등의 40인치 이상 LED TV가 100만원을 호가하는 것에 비해 스마트라·넥스디지탈 등 중소 브랜드 제품가는 30만원 안쪽이라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이들의 구미를 당긴다.

11번가 가전팀 유승범 상품기획자(MD)는 "불량 화소 발생시 무상교환해주고 1∼2년간 무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유명 브랜드 못지않게 소비자 혜택을 강화한 것도 중소 브랜드 TV의 인기 요인"이라며 "인지도는 낮아도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높은 중소 브랜드의 실속형 TV 매출이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한 청년들 사이에서 상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옥션의 최근 한 달간(7월18일∼8월17일) 중소 브랜드 가전제품 판매량도 전년 동기 대비 무려 70% 증가했다. 특히 중소 가전 중에는 냉장고와 에어컨 등이 높은 성장세를 나타냈다는 게 회사 측 전언이다. 같은 기간 냉장고 판매가 201%나 급증했고 에어컨 판매도 88% 늘었다. 중소 브랜드 냉장고의 경우 대기업 브랜드 제품 대비 40∼50%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고 성능도 고가 제품에 뒤지지 않아 인기를 끌고 있다. 옥션에 따르면 특히 1인 가구를 위한 소형 냉장고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 같은 소비 세태를 파고들어 관련 산업군의 마케팅도 한층 활발해졌다. 중소기업 가전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옥션은 지난 5월 TV 부문 대표 중소 브랜드 'TIENA' 와 함께 브랜드 기획전을 실시한 바 있다. TIENA는 옥션과 손잡고 UHD TV 및 LED TV 시리즈 전 제품을 한정 수량으로 최저가 할인 판매하며 완판 행진을 이어갔다.

업계 관계자는 "내 집 없이 이곳저곳 옮겨 다녀야 하는 오늘날 대다수의 청년에게 가전 등 생활용품은 '짐덩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한 것 같다"며 "파손 부담이 적고 꼭 필요한 기능만 갖춘 소형 중소기업 제품들이 가격과 기동성을 따지는 청년 '노마드족'의 수요와 잘 맞아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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