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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탄생 100년] '유조선 물막이' 기발한 착상… 9개월만에 여의도 33배 땅 만들다

2부. 성장 이끌고 신화로 남은 캔두이즘 <5> 농업서도 빛난 캔두이즘-서산간척지 사업

270m 남기고 급류와 전쟁

기술자도 방법 못찾을때 번뜩이는 아이디어 내놔

공사기간 36개월 줄이고 비용도 290억이나 절감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1984년 2월 서산 간척사업 현장에서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자동차그룹

난관에 빠진 물막이 공사 마지막 구간에 폐유조선을 침몰시켜 급류를 막는 데 성공한 아산의 기발한 착상은 세계 토목공학계의 경탄을 자아냈다. 지난 1984년 폐유조선으로 서산방조제 난구간을 완공시키는 현장. /사진제공=현대자동차그룹

"땅은 결국 후손들에게 돌아간다. 당대에는 자금이 한없이 투입되고 이익을 보상받기 어렵지만 민족의 이름으로 후손에게 돌아간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살아생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렇게 되뇌었다. 드넓은 밭에 농작물을 심고 정성스레 가꿔 결실을 보는 농사는 그의 오랜 꿈이었다. 여기에는 효심이 깔려 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아산은 '손톱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돌밭을 일궈가며 고생했던 아버님(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나의 살아온 이야기')'에게 언젠가는 꼭 '땅의 기적'을 선물하고 싶었고 말년에 꿈을 이뤘다. 서산간척지 사업이 바로 농업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의 결과물이다. 아산이 이룬 무수한 업적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일화로 자주 거론되는 서산간척지 사업은 아버지를 위한 때 늦은 선물과도 같은 작업이었다.

◇'유조선 공법으로 간척지 완성…농업서도 빛난 캔두이즘 신화'=현대건설은 해외 건설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 1977년 간척사업에 대한 구상을 시작해 이듬해 정부로부터 매립허가를 받아냈다.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됐으나 막판에 크나큰 난관에 봉착했다. 서산 앞바다의 조석간만 차가 워낙 커 물막이를 위해서는 20톤 이상의 돌을 구해 매립해야 하는데 이는 결코 쉽지 않았다. 거대한 급류는 무거운 돌을 모래처럼 휩쓸었다.

특히 사업 A지구 총연장 6,400m의 방조제 공사는 최종 270m를 남겨두고 급류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기존 토목 공사의 방조제 공사나 매립 공사의 상식적인 공법은 도저히 적용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난다 긴다 하는 외국 건설업체 기술자도 해결방법을 찾지 못하던 상황. 모두 우물쭈물할 때 '유레카'를 외친 것은 정 회장이었다.

고철해체용으로 울산에 정박해놓은 23만톤급 유조선이 그의 머리를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공사비 절감과 안전시공을 위한 방안을 머리를 싸매고 강구하다 대형 폐유조선으로 조수를 막은 상태에서는 흙이나 버력 등 현장 근처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도 물막이가 가능하리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

정 회장은 그 자리에서 "간척지 최종 물막이 공사는 인력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설사 인력으로 해결된다 해도 엄청난 비용은 더 문제"라며 "밀물과 썰물 때의 빠른 물살을 막기 위해 폐유조선을 침하시켜 물줄기를 차단 또는 감속시킨 다음 일시에 토사를 대량 투하하면 제방과 제방 사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뜨악함을 감추지 못했던 현대 기술진은 정 회장이 제안한 방식의 실행 가능성을 면밀하게 분석한 후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이것이 바로 '정주영 공법'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물막이 공법이었다. 1984년 2월 정 회장의 진두지휘로 작업은 철야로 진행됐다. 아산은 물막이 구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물살의 위력 앞에서 무전기를 손에 쥐고 목청이 찢어져라 외치며 공사를 이끌었다.



332m 규모의 스웨덴 유조선을 방조제 쪽으로 밀어 넣는 방식으로 현대건설은 불과 9개월 만에 완공에 성공했다. 계획공사 기간이 45개월이었으니 무려 36개월이나 시간을 단축한 셈이다.

여의도의 33배에 달하는 4,700만평의 간척지를 거짓말처럼 탄생시키면서도 아산과 엔지니어·인부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에 공사비는 290억원이나 절감됐다.

'안 되는 일'을 인정하지 않았던 아산. "되는 방법을 찾아 최선을 다하면 분명히 돼. 내가 해봤더니 그래"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아산. 그의 캔두이즘(candoism) 신화가 농업 분야에서도 또 한번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김상하 전 대한상의 회장은 아산이 세상을 떠나던 날 "서산 앞바다 간척사업 착수 전 1930년대에 이뤄졌던 삼양사의 고창간척지까지 수차례 찾아갔던 치밀함에 탄복을 금치 못했다"고 회고하며 슬퍼했다.

◇이윤은 뒷전…아버지의 삶 되밟고 싶었던 아산=정 회장이 이처럼 물불 가리지 않고 간척지 사업에 뛰어든 이유는 뭘까. 기업인으로서 이윤 창출을 위해서만은 아니었다는 게 주변인들의 한결같은 귀띔이다. 지난날 아버지의 삶을 떠올리며 밭을 일구는 것, 대신 맨손이 아니라 트랙터를 몰며 기계화된 '농사꾼'이 한번 돼보는 것을 아산은 소망했다.

농업에 대한 이 같은 아산의 애착과 고집은 범(凡)현대가(家) 사업들을 통해 명맥을 이어왔다. 아산의 아들인 정몽준 전 새누리당 의원이 최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은 2009년 러시아 연해주에 위치한 뉴질랜드인 소유의 하롤제르노 영농법인 지분 67.6%를 인수하기로 합의해 해외 영농산업에 발을 디뎠다.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운명일까. 공교롭게도 이 법인의 넓이는 여의도 면적의 33배로 아산이 약 40년 전에 주도했던 간척지 사업장 규모와 같다. 서산 간척사업으로 상징되는 농업에 대한 아산의 유지와 꿈이 아들대에 이르러 해외 농지개척으로 발전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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