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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십 경영을 다시본다] <2> 허점 드러난 영미식 지배구조

전문경영인 단기 성과만 급급… 위기때 효율성 떨어져<br>주주·증시가 기업 '쥐락펴락'에 비전 수립·리스크 관리는 뒷전 결국 GE등 금융위기에 초토화<br>우리도 환란후 무분별하게 도입 "한국식 지배 구조 찾아야" 지적



지난 3월 세계적인 초우량 기업으로 손꼽히던 제너럴일렉트릭(GE)은 53년간 지켜오던 최고 신용등급을 강등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GE의 장기채 신용등급을 기존 'AAA'에서 'AA+'로 낮춘 것.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금융 자회사 GE캐피털이 부실해진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이 때문에 '가장 성공적인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GE의 경영방식 역시 도마에 오르게 됐다. GE는 전문경영인 체제 아래 주주가치 극대화를 강조한 대표적인 기업으로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 '영미식 지배구조'의 표상이었다. 그러나 전문경영인들은 자리 보전 및 스톡옵션을 위해 단기적인 성과 내기에만 급급했고 장기적 전략 수립이나 리스크 관리에 실패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특히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붕괴되면서 GE와 같은 기업들이 채택한 '영미식 지배구조'의 허점들이 드러나게 됐다. 영미식 지배구조는 스톡옵션을 이용해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보상을 경영실적과 연관시키는 한편 사외이사제도를 통해 경영투명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독립적인 이사회를 두고 이사회 의장을 CEO와 분리하는 형태다. 주주 분포 측면에서는 25% 이상 주식을 소유한 대주주가 없고 주식이 분산된 형태를 보인다. '소유'와 '경영'이 철저히 분리된 구조다. 뚜렷한 주인이 없다 보니 각 투자자(주주)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고 기업의 흥망성쇠는 주식시장이 좌우하는 경우가 많았다. 금융시장이 어떤 기업을 선호하고 어떤 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판단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구조조정이 진행됐고 산업구조가 재편됐다. 하지만 이 같은 영미식 지배구조의 근간이었던 금융시장은 생각만큼 이성적이지도,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오히려 투기적 요소가 강했다.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인 스티븐 로치 등 일부 이코노미스트 및 경제학자들이 오래 전부터 미국 금융시장이 거품을 잘 일으키는 시장이라고 지적해왔던 사실이 지난해 금융위기를 계기로 재확인된 것이다. 그동안 간과됐던 영미식 지배구조라는 제도 자체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도 나오기 시작했다. 전문경영인들은 생사여탈이 주주총회에서 이뤄지고 주가로 경영성과를 평가 받다 보니 매출 관련 이익 지표 등 단기 실적을 올리는 데 혈안이 됐다.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과감한 결정을 내리는 대신 임기 내에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투기적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리먼브러더스•뱅크오브아메리카(BOA)•씨티그룹 등 금융회사의 CEO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같이 안정성이 검증되지 않은 파생상품에 투자했다가 파산 위기에까지 내몰리게 됐다. 심지어 스톡옵션을 받기 위해 회사 실적을 부풀리는 분식회계를 저지르기도 했으며 회사는 망해가는데도 보너스 잔치를 벌이는 등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까지 발생했다. 이에 따라 미국 내에서 전문경영인에 대한 불신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번져나간 비(非)오너 CEO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해 그들의 무책임한 경영을 빗대 'CEO 같은 인간(CEO-like)'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심지어 "CEO의 책임은 주주가치를 극대화시키는 것"이라면서 분기별로 주가를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GE의 전 CEO 잭 웰치조차도 "단기적 성과에 매달리며 주주가치 증대에만 주력하는 것은 정신 나간 짓"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을 정도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꼽히던 미국의 GE•크라이슬러•GM 등이 이번 불황에 초토화됐던 것은 단기적 성과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전문경영인 체제의 한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용기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은 "영미식 지배구조는 근시안적인 의사결정밖에 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성장을 위한 투자를 하지 못하고 신성장동력을 찾는 것에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영미식 지배구조는 효율성이 검증돼 발달한 제도라기보다는 미국•영국 기업들의 주식이 분산된 결과에 따라 형성된 것이며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지배구조라고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유럽의 경우 상장기업 중 25% 이상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가 존재한 기업들이 60~70%에 달하며 아시아 지역 기업들도 상당수가 소유와 경영이 일치하는 점에서 볼 때 오히려 미국과 영국만이 25% 이상 대주주가 존재하는 기업의 비중이 5% 이하인 유이(有二)한 국가라는 것이다. 미국 경제전문 주간지인 비즈니스위크는 2003년 11월10일자에서 S&P500지수에 편입된 미국 기업 중 가족기업의 경영성과가 소유ㆍ경영이 분산된 기업보다 우수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가족기업의 이익증가율(21.1%)과 매출증가율(23.4%)이 소유분산기업(이익증가율 12.6%, 매출증가율 10.8%)보다 높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영미식 지배구조를 무분별하게 도입한 한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으며 한국식 지배구조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앤드루 월터 영국 런던정경대 교수는 한 심포지엄에서 "금융위기로 인해 국제금융체제의 기준 자체가 위기를 맞고 있으며 영미식 지배구조 역시 효율성이 높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해외자본시장에서의 공신력을 회복하기 위해 한국•태국•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들이 영미식 국제기준을 빠르게 받아들였지만 한계에 봉착한 국제기준을 계속 따라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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