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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윤동주 문학관처럼-박형준 국회 사무총장


지난주 일요일 청운동에 있는 윤동주 문학관을 다녀왔다. 굴곡진 인왕산 자락과 신록에 감싸인 도심 풍경을 보노라면 서울이 참으로 아름다운 도시임을 새삼 느끼게 한다.

윤동주라는 '별빛 같은 시인'을 기념하기는 딱 좋은 곳이었다. 그가 친필로 원고지에 또박또박 쓴 시들은 그의 품성을 저절로 알게 한다. 여리면서도 올곧고 잃어버린 나라와 백성에 늘 미안해하고 그러면서도 별을 보면서 늘 희망을 잃지 않는 밝은 심성이 따박따박 쓴 시어 하나하나에 그대로 묻어 있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새 길로'라는 이 시는 토속적 정념과 현실을 넘어서려는 의지가 절묘하게 닿아 있다. 독립운동을 하기에는 너무 고운 품성을 지녔던 윤동주. 그 고운 마음 때문에 민족의 정체성 상실이라는 현실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이념에 물들지 않고 삶의 깊은 뿌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시 하나하나는 큰 울림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어떤 독립운동보다 파장이 크다는 것을 알아챈 일본은 그를 감옥에 가둬버린다. 거기서 2년, 정체불명의 약물 주사로 그는 맑은 별 같은 그의 삶을 서럽게 마감했다.

이곳이 유명해진 것은 물탱크가 있었던 허접스러운 공간을 윤동주의 삶과 정신에 맞게 재창조했기 때문이다. 이소진이라는 젊은 건축가의 참신한 아이디어도 돋보이지만 관이 섣부르게 개입하지 않고 건축가의 철학이 담긴 구상을 끝까지 지원해준 점도 칭찬 받을 만하다. 물탱크 내부를 윤동주가 죽음을 맞이했던 후쿠오카 형무소로 꾸미고 그 벽면에 윤동주의 삶과 시를 투영하는 발상도 신선하다. 이곳에서 윤동주 영상을 본 후 문학관을 다시 돌아보면 누구라도 윤동주의 삶을 자신의 기억으로 오래 머물게 하지 않을 수 없다.



윤동주 문학관 옆에 있는 청운 문학관은 한옥의 멋을 살려 소박하게 지어졌다. 비스듬한 언덕을 잘 이용한 걷기 좋은 정원도 있고 흔들리는 숲을 볼 수 있는 마루도 정겹다. 마침 한 젊은 엄마가 아이에게 동화를 읽어주고 있는 모습이 어찌 그리 예쁘게 보이든지.

감각적인 재미가 범람한 이때 이렇게 작은 성찰적 공간들이 생겨난다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물론 감각적 재미도 문화의 중요한 속성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일상에 여백을 만들어주고 삶을 해석할 기회를 주는 문화가 함께 해야 한다.

우리는 감동에 목마르다. 그 갈증을 풀어주는 것이 문화의 몫이다. 가까운 곳에 윤기 있는 작은 문화 공간들이 속속 생길수록 우리의 마음은 넉넉해진다. 사람 관계도 부드러워진다. 좋은 문화도시가 된다. 그래서 이를 위한 투자는 어떤 복지 못지않게 중요하다. 단, 관 주도형이 아니라 민간의 창의성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방식이어야 한다. 윤동주 문학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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