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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산울림, '불꽃의 여자 나혜석'편

[리뷰] 산울림, '불꽃의 여자 나혜석'편 ^리뷰-불꽃의 여자, 나혜석 “나는 인형이었네. 어려서는 아버지의 딸 인형, 자라서는 남편의 아내인형…” “여자도 사람입니다. 아내이기 이전에 어머니이기 이전에. 결혼한 여자도 사람입니다” 40대 중반 여성의 목소리다. 아직 막이 오르기 전 관객들은 중년 여인의 까랑까랑한 목소리에 담겨 나오는 짜증, 한숨, 그리고 분노를 느낀다. 어쩐지 불편하고, 어쩐지 유쾌할 것 같지 않은 느낌이 엄습해 온다. `불꽃의 여자 나혜석(유진월 作/채윤일 연출)'은 그렇게 사람들 앞에 성큼 다가선다. 나혜석(1896~1948), 그는 누구인가. 진명여학교 수석 졸업.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일본에 건너가 서양화를 공부한 사람. 서울에 유화 개인전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가졌던 화가. 나혜석은 역시 국내 최초로 나선 부부동반 세계여행도중 최 린과 염문에 휩싸여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이혼이라는 절차를 거치면서 `이혼고백서'를 발표했다. 최린과의 사이가 틀어진 뒤에는 그를 상대로 `정조유린에 관한 소송'을 진행하면서 장안의 화제를 몰고 다녔다. 그녀의 삶이 너무 파격을 걸었던 탓이었을까. 한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모든 걸 잃고 결국 행려병자 병동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 사람들은 그 속에서 반봉건의 힘겨운 삶을 읽어낸다. 생각해보면 사회 제도란 참 두터운 벽이다. 마치 한번 발을 담그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늪처럼. 하지만 가끔 온 몸을 던져 그에 저항하는 못 말릴 인생들과 만날 수 있다. 나혜석과 같은 그런 사람을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그이의 실제 삶만큼이나 난해한 화두일지도 모른다. 극은 대체로 수작이었다. 하지만 그이의 일생에 대한 실재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또한 반봉건적인 삶 그 자체에 대한 진지한 평가를 내려야 한다는 두 가지 목적 속에서 전체적으로 약간 숨 가빠 보였다. `위대한 여성 선구자'만을 그린다면 자칫 계몽극 같은 인상을 줄 수도 있고, `인간 나혜석'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자칫 통속적인 틀로 빠져들 수도 있다. 이 무대로 데뷔하는 신예 박호영(나혜석 분)의 어깨엔 어느 정도 힘이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노년으로 이어지는 중반이후의 연기는 호연이었다. 깊이와 여유로움, 그리고 자연스러움이 더해진다면 제대로 된 여배우하나를 건지는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도 같다. 남편 김호영 역을 맡은 안석환은 모나지 않은 자연스런 연기로 극을 받쳐 주었다. 무대에 불이 꺼진 후 일상으로 돌아가면서 드는 생각은 `솔직함'이라는 단어였다. 누구나 완벽한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고민 또는 번뇌는 비단 나혜석만의 독특한 경험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수절이라는 봉건적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맹위를 떨쳤던 시절, 환쟁이의 탈을 쓴 채 한바탕 `반봉건'이라는 살풀이를 펼쳤던 나혜석의 삶은 분명 관객에게 어떤 형태로든 깊은 여운을 남기는듯 하다. 산울림 개관 15주년 기념공연 제4탄. 화ㆍ 목 오후7시, 수ㆍ금ㆍ토 오후3시ㆍ7시, 일요일3 시. 월요일은 휴관 (02)334-5915 /김희원기자 heewk @sed.co.kr입력시간 2000/11/06 18:05 ◀ 이전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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