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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12월 22일] '포이즌 필' 도입 서두르자

지난 11월 초 정부는 인수합병(M&A) 방어장치의 하나로 해외 각국에서 널리 활용되는 포이즌 필 제도(poison pill)를 도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포이즌 필이란 적대적 M&A의 대상이 되는 기업이 공격자를 제외한 모든 주주에게 싼값으로 신주를 발행해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신주인수선택권제도라고 한다. 원래 포이즌 필은 1980년대 중반 미국에서 처음으로 고안됐다. 포이즌 필은 우량상장 기업을 인수해 소수주주를 퇴출시키고 상장을 폐지하거나 인수기업의 사업 부문 또는 자산을 분할 매각해 지나치게 단기 이익만 추구하는 약탈적 현상에서 기업가치와 주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탄생했다. 약탈적 M&A서 기업 보호해야 약탈적 M&A는 단기적으로는 주가상승을 유도해 이득을 볼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주주의 이익을 해치고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경우가 많다. 포이즌 필이 일본은 물론 유럽에도 도입돼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 잡은 것은 이런 이유가 배경이 됐다. 그런데 요사이 이 제도의 도입을 둘러싸고 찬반대립이 날카롭다. 포이즌 필 도입을 반대하는 쪽에서는 단기의 재무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적대적 M&A의 폐해를 대단하지 않게 생각하거나 새 제도의 도입으로 대주주나 경영진만 이득을 보고 일반주주는 손해를 볼 것이라는 시각이 밑바탕에 깔린 듯하다. 실제로 대기업 총수들이 이미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또 무슨 보호를 해주려 하느냐는 비판, 포이즌 필 도입시 적대적 M&A가 불가능해져 실패한 경영진을 축출하기도 어렵게 될 것이라는 우려, 주가상승에 기여하는 M&A 테마가 사라질 수 있다는 투자가들의 불만 등이 표출되기도 한다. 그러나 방어장치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좋은 기술, 좋은 제품의 개발을 최우선시하는 중소ㆍ벤처기업들은 적대적 M&A에 무방비 상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기업도 오너 지분율이 낮고 자사주 매입 등 방어대책에 소홀했다면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적대적 M&A 방어장치의 도입을 늦춘다면 국민경제적으로 득보다 실이 훨씬 크다. 포이즌 필은 경영진을 일방적으로 보호하거나 정당한 M&A 시도까지 차단하는 장치가 아니다. M&A 공격자들은 경영진이 부여한 포이즌 필이 부당하다는 취지로 법원에 행사중지를 청구할 수 있고 법원은 기업가치나 주주이익에 반해 포이즌 필이 부여될 경우 무효로 판시할 수 있다. 기업을 부실하게 만든 경영진이 기득권 유지의 수단으로 포이즌 필을 활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포이즌 필 때문에 경영권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투자가 입장에서는 포이즌 필 도입시 M&A 관련 주가상승을 기대하기 힘들어져 별반 달갑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동안 M&A가 호재였던 기업들을 살펴보면 이익을 본 투자가도 있겠지만 고가에 주식을 샀다 손해를 본 투자가들이 더 많았다. 따라서 머니게임에 현혹돼 피해보는 사례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점도 재인식됐으면 한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포이즌 필 자체를 무조건 반대하기보다는 우리 현실에 맞게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포이즌 필 도입에 걸림돌인 주요쟁점 중 하나가 경영진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용할 소지가 있다는 점인데 이번 정부안은 그 점을 충분히 감안하고 있다. 남용 소지 없게 조기 입법을 포이즌 필 도입을 위해서는 먼저 주주총회를 열어 정관을 변경하는 특별결의 절차를 거치게 해 주주들의 절대 다수의사에 따르도록 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사회에서 이사의 3분의2 이상이 찬성할 경우에만 포이즌 필을 부여할 수 있게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물론 포이즌 필의 행사요건을 더욱 강화해 이사회 대신 주주총회 결의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국ㆍ일본ㆍ프랑스 등은 이사회에 포이즌 필 발동권을 부여하고 있다. 이사회는 법논리상으로 기업가치와 주주이익을 위해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지위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발동 여부를 주주총회에서 결정하도록 하는 것은 이 같은 논리에 어긋나고 포이즌 필이 갖는 신속하고도 효과적인 방어수단으로서의 기능을 빼앗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늘날과 같은 전세계적 경제위기 속에서는 투기적ㆍ약탈적 M&A는 특히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약탈적 M&A로 금융기관 파산이나 기업파탄을 겪은 외국사례가 너무나 많다. 포이즌 필 제도가 '사후약방문' 격이 되지 않도록 서둘러 입법을 추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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