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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초대석/발자취] 노동운동가·시인·치과의사…
입력2001-05-13 00:00:00
수정
2001.05.13 00:00:00
이력만큼 아이디어도 풍부78년 10월 어느날. 일년간의 옥살이를 하고 나온 김영환은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심경이었다. '파란 하늘을 다시 볼 수 있겠구나' 하는 소박한 바람이 한마디 말에 와르르 무너졌기 때문이다. "긴급조치 위반". 한해 더 철창신세를 져야 한다.
'차라리 2년 인줄 알았다면 이렇게 낙담하지는 않을 텐데.'그 후 한달간 독방에서 살아야 했다.
그를 위로한 것은 시간이었다. 김영환은 백낙청 교수가 보내준 '창작과 비평'10년간의 영인본을 읽었다. 또 기독교 사상서를 비롯해 시집 등 수 백권의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감옥의 회벽은 그에게 있어 좋은 습작지였다. 구부러지고 녹슨 못으로 그는 희망의 시를 써내려 갔다. 86년 '문학시대'를 통한 문단 데뷔와 그가 펴낸 네 권의 시집과 한 권의 동시집, 수필집 두 권은 이렇게 시작했다.
김영환 장관은 55년 충북 괴산에서 태어났다. 시골의 가난한 집안. 김 장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부친이다. "아버지는 가난하고 못 배워서인지 교양 있는 분은 아니었다. 원망도 많이 했다. 그러나 강인하면서도 자식에게 대한 끝없는 희생은 나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했다."
그는 노동 운동가였다. 80년대 그는 실제로 노동자로서 현장에서 살았다. 1급 전기공사기사ㆍ1급 소방설비기사 등 8개의 자격증은 그가 노동하며 살기 위해 필요했던 것들이다.
수배와 구속, 제적의 과정을 겪으면서 그의 대학생활은 길어지기만 했다.
대학에서의 전공은 치과. 그는 졸업 후 종로에서 '믿음치과'를 개업, 경제적으로 안정됐고 마음도 편한 생활을 했다. "의사로서 그대로 안주하고 싶은 생각이 많았다." 김 장관은 털어놓는다.
그러나 타고난 성품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정치에 뛰어들었고 96년 경기도 안산에서 15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다. 그리고 지난해 무난히 재선에 성공했다. 5년간 그는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서 일하면서 국정감사 때마다 날카로운 질문으로 역대 장관들을 긴장시켰다.
그는 활발한 의정활동으로 99년엔 한국유권자운동연합으로부터 '과학기술정통위원회 최우수상', 시화호 문제로 환경운동연합에서 '녹색정치인상'을 받았다.
또 지난해에는 민주당의 대변인을 맡기도 했다. 올해 3월 과학기술부의 지휘봉을 잡은 김 장관은 꼼꼼한 상황분석과 풍부한 아이디어를 가진 인물로 평가 받는다.
▲55년 충북 괴산 출생 ▲77년 유신철폐 투쟁으로 투옥 ▲86년 '문학시대'로 문단 데뷔 ▲88년 치과개업 ▲96년 국회의원 당선(경기 안산갑ㆍ15대, 2000년 재선) ▲2000년 새천년 민주당 대변인 ▲2001년 과학기술부 장관 ▲전은주씨와 1남(한결) 2녀(하늘ㆍ하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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