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슈밋 구글 회장은 지난달 말 서울대 강연에서 "창의력은 개개인ㆍ풀뿌리ㆍ시스템과 실패를 편안히 받아들이는 문화에서 나온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는 우리 과학기술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연구문화가 조성돼야 국정목표인 창조경제를 달성하는 데 과학기술계가 보다 더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래창조과학부를 중심으로 연구자의 창의력 제고와 연구전념을 위해 범부처적인'과학기술 규제개선 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국가연구개발사업 관리제도를 연구자 중심으로 개선해왔다. 또한 전문연구지원기관인 한국연구재단도 연구자들이 더욱 창의력을 발휘하고 연구에 몰입할 수 있도록 중ㆍ장기적인 연구지원 방안을 모색하며 모험연구나 성실실패를 인정하는 등 제도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부처 지침 다르고 비용정산 부담까지
그러나 최근 연구비 증가와 함께 규정도 늘어나면서 이에 대한 개선 노력이 연구자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국가연구개발사업 관리 분야의 '손톱 밑 가시'처럼 여겨지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한 개선방향을 제시해본다.
우선 정부 부처별로 상이한 규정을 범부처 차원에서 표준화할 필요가 있다. 최근 19개 부처가 111개의 연구개발과 관련된 지침을 각 부처별로 운영하고 있는데 연구자들은 이 많은 규정을 이해하고 준수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나아가 규정 자체가 부처 간 칸막이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과학기술기본법ㆍ공동관리규정 등을 중심으로 상이한 규정을 정비해 공통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연구비를 사용하는 데 있어 네거티브 규제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연구비를 사용할 때 연구비 지출금지 사항만 제시하고 연구와 관련된 나머지 사항은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높여주는 것이다. 선량한 대다수 연구자들의 가장 큰 불만이 연구비 사용과 정산의 어려움을 호소하니만큼 이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연구비 사용과 정산의 어려움은 행정부담을 증가시켜 창의적 연구와 이에 전념하는 것을 방해한다.
셋째 계약형 연구지원 방식(contract type)에서 연구장려금 방식(grants type)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2차 전쟁 시작 후 미국 과학기술연구개발국(OSRD)은 계약형을 그랜트형으로 전환해 레이더ㆍ페니실린 개발 등 다양한 성공을 거둔 경험이 있다. 투입 중심, 공급자 중심의 연구지원시스템은 연구자들로 하여금 실패가 두려워 도전과 기회조차 갖지 못하게 하고 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 창출이 가능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연구활동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연구가 가능하도록 성실실패를 인정하는 제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창의적 연구 막는 제도개선 나서야
마지막으로 양적 평가를 지양하고 질적 평가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평가는 산출 중심의 양적 수준을 가늠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었다. 이는 연구의 양적 성장을 유도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연구재정 비효율화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올해 미래부가 출범하면서 과학기술계에 대한 기대가 크고 연구자의 창의력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해보다 높다. 국가연구개발사업에서 연구자들이 느끼고 있는 손톱 밑 가시 같은 제도들을 하루빨리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는 연구비의 효율적 분배를 가능하게 하며 상상력과 창의력이 기반된 창조경제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준다. 한 번에 개선할 수는 없을 것이다. 관련법 개정이나 예산의 뒷받침이 필요할 수도 있고 적용 분야에 대한 다양한 고려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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