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태가 이처럼 꼬인 데는 대법원의 모호한 판결도 일조했다. 노사 간 신의성실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중대한 경영상 위기에 처한 기업에 한해 통상임금 소급청구를 제한할 수 있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큰 책임은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와 국회에 있다. 고용노동부는 법원이 오래전부터 기존의 통상임금 지침과 배치되는 판결을 해왔는데도 근로기준법령을 고치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법적 구속력이 떨어지는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만 내놓은 채 입법화를 국회로 미뤘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도 노사정소위원회를 가동해 근로시간 단축, 통상임금, 정년연장 후속조치 등을 논의하는 척만 했지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
입법주체의 직무유기는 노사갈등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국회도 분발해야겠지만 이런 때일수록 정부가 중심을 잘 잡고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퇴직자에게 지급하지 않는 정기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고 올해 임단협까지 소급청구를 불허하는 지침의 법제화를 서둘러야 한다. 노동계가 반발하고 있지만 통상임금의 고정성 요건과 노사 간 신의성실 원칙을 강조한 대법원의 판결 취지에 부합하는 만큼 마냥 미룰 게 아니다. 정부와 국회는 내수침체로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경제에서 '노사분규 리스크'만이라도 걷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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