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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 고집' 으로 한방 과학화 앞장

■ 광동제약 창업주 최수부 회장 별세


평생 한방의 과학화를 위해 힘써오던 최수부(사진) 광동제약 회장이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향년 78세.

광동제약 측은 24일 최 회장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광동제약과 소방 당국 등에 따르면 낮12시30분께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의 한 골프장 사우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최 회장은 휴가를 보내고 있던 중이었다.

최 회장은 제약업계에서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기업인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10여년 전 자사의 우황청심원 광고에 직접 출연해 "우황, 사향만큼은 30년째 제가 직접 고르고 있습니다"라는 멘트로 유명세를 탄 최 회장은 한방 제약업계의 대표적인 최고경영자(CEO)다.

1936년 대구 달성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 중퇴가 학력의 전부인 그는 어렸을 때부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소년가장으로 각종 품팔이를 하다 1960년 고려인삼산업사에 외판원으로 입사해 업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3년 연속 판매왕을 차지해 창업자금을 마련한 그는 1963년 서울 서빙고동에서 광동제약사를 창업하며 제약사업을 시작했다.

우황청심원ㆍ쌍화탕 등의 한방의약품이 크게 성공을 거두며 중견 제약사로 발돋움한 뒤 2001년 최대 히트작인 '비타500'을 내놓았다. 마시는 비타민C인 비타500은 자양강장제 드링크시장에서 40여년간 1위를 고수해온 '박카스'를 밀어내고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2005년에는 비타500으로만 연매출 1,000억원을 넘기기도 했으며 광동제약도 국내 제약업계 10위권으로 올라섰다.

또한 차음료시장에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광동옥수수수염차와 헛개차 등을 판매, 최근에는 삼다수 유통까지 맡으며 식음료 업계에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최 회장은 국내 재계에서는 '최씨 고집'으로도 유명하다. 전두환 정권 당시 권력 실세와 멱살을 잡고 싸운 것도 업계에서는 전설적인 사건으로 회자되고 있다. 당시 그는 중국 인삼 수입 문제를 놓고 정권 실세와 말다툼을 벌이다 결국 멱살잡이까지 치닫았지만 관세청의 수입금지 조치를 결국 해제시켰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사태로 1차 부도 위기까지 몰렸지만 사재 출연과 종업원들의 보너스 반려 등으로 위기를 극복한 것도 뚝심의 결과로 일컬어진다.

한편 심장병 어린이에게 무료 수술을 지원해 500여명이 넘는 어린이들이 치료를 받는가 하면 가산문화재단을 만들어 불우 청소년들을 돕는 등 활발한 사회공헌을 펼치기도 했다. 슬하에 자녀는 1남 3녀를 두고 있다. 막내아들인 최성원(45) 광동제약 사장이 회사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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