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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론 다시 힘 받나

안기부 X파일·두산家 분쟁등 잇따른 사건이 개력명분 제공<br>순환출자 금지등 수면위 재부상

경기침체에 밀려 숨죽이던 재벌개혁론자들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지고 있다.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에 대한 삼성그룹의 헌법소원으로 정부와 여당의 심사가 가뜩이나 뒤틀려 있던 차에 안기부 X파일에 연계된 삼성의 정치자금 문제와 두산그룹의 경영권 다툼 등 개혁에 명분을 제공하는 ‘사건’들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강경론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지난해 하반기 노무현 대통령의 해외순방을 기점으로 불기 시작했던 재벌에 대한 유화론과 친(親)기업적 정책 대신 재벌의 소유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개혁노선이 정책의 중심으로 자리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현재 정부와 여당 일각에서 추진 중인 재벌개혁 방안들은 상당히 다양하고 그 강도도 세게 나타나고 있다. 개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재벌들의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것이다. 순환출자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은 삼성물산과 현대엘리베이터에 이어 두산그룹 순환출자의 한 축인 두산산업개발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 조짐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당초 여당 내에서 일부 강경론자들 사이에서만 논의돼왔지만 최근의 재벌에 대한 여론의 반감을 등에 업고 세를 확대해가고 있다. 열린우리당 내에서 기업정책을 맡고 있는 제3정조위원회에서는 이미 상당 부분 논의가 진척됐다는 소식도 들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대신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는 대안도 거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재계는 물론 정부 내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않다. 순환출자를 급작스럽게 금지하면 국내 상당수 대기업 오너들이 소유지배구조에 심각한 타격을 입는데다 도리어 외국자본의 공격에 빌미를 제공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은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를 중심으로 한 후계구도를 만드는 데 치명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삼성그룹의 헌법소원으로 논란이 일고 있는 금융사 의결권 문제도 재벌개혁의 또 다른 무기로 등장하는 조짐이다.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이동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5일 ‘금산법(금융산업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제24조 위반건에 대한 법ㆍ경제적 분석’ 보고서에서 “삼성그룹 금융계열사들이 초과 보유한 비금융 계열사 주식을 처분하도록 하라”고 금융감독당국에 촉구하고 나섰다. 여당과 공정위가 삼성의 헌법소원에 대해 강경 노선을 취하고 있는 상황에서 ‘X파일’까지 터지면서 삼성에 대한 전방위 압박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공정거래위원회에 강제조사권을 부여하는 방안까지 속도를 내고 있는 등 재계를 향한 칼날은 어느 때보다 예리하게 가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이런 상황에서 관심은 자연스럽게 노 대통령의 의중으로 모아지고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외국을 순방할 때마다 ‘기업이 곧 국가다’ ‘나가보니 기업의 고마움을 알겠다’며 친기업적 발언을 연이어 쏟아냈었다. 올초에는 재벌 총수들과 연쇄적으로 접촉하며 ‘친기업적 태도=경제 살리기’라는 등식을 앞서 실천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계속해 친기업 정책을 내놓았지만 과연 기업들이 그만큼 투자를 늘렸느냐”며 “재계로서도 현 상황에서는 투자를 무기로 규제완화를 외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익명을 요구한 A그룹 임원은 “유가급등과 위앤화 절상 등 대외여건이 최악인 상황에서 X파일 문제가 정치자금에 대한 전방위 수사 등으로 이어질 경우 재계로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분위기가 나빠질 수 있다”며 “정부와 여당이 경제상황을 감안해 보다 냉철한 틀에서 재벌개혁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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