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진·동양 등 잇따른 대기업 부도사태로 급격히 위축됐던 직접금융 시장을 살리기 위해 지난 2013년 도입된 회사채 신속인수제도가 내년부터 없어진다.
이 제도가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지연시키는 통로로 활용되고 있다는 정부 판단에 따른 것으로 최근 금융당국이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좀비기업 정리작업의 일환이라는 분석이다.
9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회사채차환발행심사위원회는 7월 회사채 신속인수제도의 신규 접수를 올해 말까지만 받기로 결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이미 발행된 물량에 대해서는 기업이 요청할 경우 차환발행을 통해 2년간 만기상환을 연장해주기로 했다. 회사채 신속인수제의 일몰이 연말로 끝남에 따라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 등과 맞물려 경영난에 직면한 기업의 구조조정도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 고위관계자는 "회사채 시장의 안정을 위해 회사채 신속인수제를 도입했지만 한편으로는 정부가 부실기업 연명을 도와 시장에 역행하는 측면도 있었다"며 "(회사채 신속인수제 폐지를) 부실여신 관리 강화 측면에서 이해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달부터 오는 12월까지 만기도래하는 회사채 규모는 총 37조805억원이다. 만만치 않은 규모라 상환이 어려운 기업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회사채 신속인수제는 일시적인 유동성 악화로 만기도래 채권을 상환하기 어려운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다.
기업이 상환해야 하는 회사채를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과 신용보증기금 등이 대신 갚고 새로 회사채를 발행해주면 해당 기업은 만기도래 물량의 20%에 달하는 시장안정유동화증권(P-CBO) 후순위채를 매입하는 구조다.
정부는 지난 2001년 얼어붙은 회사채 시장의 구원투수로 이 제도를 처음 도입해 2년간 활용한 후 2013년 이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현재까지 회사채신속인수제를 통한 차환 회사채 규모는 총 2조6,000억원에 이른다. 적용 대상이 되려면 신용평가사로부터 경영정상화가 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아야 하는데 그간 현대상선·동부제철·한진해운·한라·대성산업 등 전방산업 5개 대기업만 선택을 받았다. 이에 따라 대기업 특혜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연말까지 신규 인수 자체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신규 물량 인수 여지를 닫지는 않았지만 금융당국의 정책 방향이 부실기업에 대한 선제 구조조정으로 가닥이 잡혔기 때문이다. 오는 10월에는 정부 주도의 기업 구조조정 전문회사도 출범한다.
금융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는 시기에 이런 조치를 내렸다는 점에서 한계기업에 대한 당국의 정리 의지를 감지할 수 있다"며 "시범 케이스로 나가떨어지는 대기업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이미 지원을 받은 기업도 안심하기는 어렵다"며 "한 차례 차환 발행은 가능하지만 추가 지원이 안 되는 상황에서 영업도 호전되지 않으면 재차 자금난에 봉착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