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두(사진) 서강대학교 총장은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이 제시했던 개혁 프로그램처럼 지금의 위기상황에서도 정부가 경제회생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 총장은 2일 서울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금리인하 등 위기극복을 위한 정부 조치가 시장에서 효력을 발휘하려면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져야 하는데 최근의 정책들은 그런 점에서 설득력이 약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손 총장은 “유동성을 공급하고 부동산 관련 규제를 풀어주는 등의 정부 정책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면서도 경제 주체의 에너지를 한데 모을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의 부재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는 “앞으로 국민에 대한 정책의 설득력을 높이고 위기극복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며 “위기를 조기 극복하려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국민의 힘을 모을 수 있는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일관된 원칙을 지키면 시장도 따르지만 정부가 흔들리면 시장도 춤을 추게 된다”며 일관된 개혁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 총장은 현 경제팀에 대한 일각의 비판적인 시각에 대해 “중요한 것은 국제금융시장에서의 객관적인 평가”라며 “국내외 언론에서 비판적인 평가가 나오지 않도록 정부가 노련하게 대응해 신뢰를 얻어야 시장불안이 진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외환위기 직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을 지내시면서 급박한 위기상황에 대해 누구보다 경험이 많으신 것으로 압니다. 당시 위기상황과 지금의 차이가 있다면요. ▦지난 1997년 외환위기는 동남아에 국한됐던 국지전이어서 극복하기가 수월했습니다. IMF도 우리를 적극 도우려 했고 정권 초기의 탄력을 받아 정부도 일하기가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위기의 발단이 미국입니다. 세계경제의 심장이 탈이 난 것입니다. IMF 외환위기 당시보다 어렵지만 낙관적인 요인도 있습니다. 우선 지금은 각국 간 국제공조가 이뤄져 있습니다. 또 과거보다 우리의 수출시장이 다변화돼 있습니다. 지금 선진국 경기침체에 따른 수출둔화가 우려되긴 하지만 미국시장 의존도가 낮아지고 틈새시장을 갖췄다는 점에서 10월 경상수가 흑자로 돌아서면 시장에도 좋은 시그널이 될 것입니다. 지금은 경제지표 중에 좋은 시그널이 나타나는 것이 중요한 시기입니다. -사실 이번 위기에는 대외적 요인 외에 내부요인도 많이 작용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사실 새 정부가 운이 없었습니다. 출범 후 4개월간의 촛불시위로 국정의 진지 구축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국민이 정부와 대통령을 믿고 리더십이 확고해졌다면 위기극복과 정책협조도 이뤄졌겠지만 리더십에 타격을 입었기 때문에 어려워졌습니다. 국회는 이제서야 초당적 협조를 하겠다는 입장을 보였고 국민들은 과거의 노사ㆍ지역 갈등에 이번에는 종교 갈등까지 더해 에너지를 모으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위기를 계기로 힘을 합칠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정책적 처방이라면 어떤 것들이 있겠습니까. ▦자산 디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주택ㆍ부동산 등 자산가격의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국민들의 심리적으로 타격을 받기 때문입니다. 자산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유동성 공급과 부동산 관련 규제, 세제 손질이 시급합니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정책 방향은 제대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양도세 중과 완화 등 풀 것은 빨리 풀고 투자의 걸림돌도 빨리 제거해야 할 것입니다. -좋은 정책을 펴더라도 정부의 신뢰회복이 뒷받침돼야 하는데요. ▦외환위기 때는 기업, 금융, 공공 부문, 노동 등 4가지 개혁 프로그램을 이행하면 구제금융이 들어오고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같은 프로그램이나 청사진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대외 공신력 제고를 위해 공공 부문 등 여러 개혁이 변함없이 이뤄질 것이라는 시그널을 줘야 합니다. 지금은 1997년 당시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경제 펀더멘털이 좋고 외환보유액도 많습니다. 하지만 론스타 문제 처리나 외평채 발행 유보 과정에서 정부의 입장 변화가 국제사회에 나쁜 시그널을 준 게 사실입니다. 국제금융사회에 신뢰를 심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이라도 외국 자금이 대거 빠져나가면 위기는 옵니다. -청사진이라는 말씀이 인상적이지만 지금 정부는 매일 벌어지는 상황을 쫓아가기도 바쁜 것 같은데요. ▦국민들이 보기에는 땜질하는 식이지요. 정책을 시행할 때는 의미와 효과 등을 국민에게 알려야 시장에도 효력을 발휘합니다. 정부는 단기ㆍ장기 대책을 세워 우리 경제가 어떻게 좋아진다는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해야 합니다. 결국은 ‘소통’의 문제인데요. 의사가 약을 처방할 때도 병의 진행상황과 약의 치료 효과, 병세의 호전시기 등을 설명해주면 환자가 안심할 수 있지 않습니까. 다만 지금 대통령이 직접 움직이면서 국제공조가 이뤄지고 있어 위기가 오래 가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대통령과 정부가 열심히 뛰고 세계와 함께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위기극복에 대한 신뢰를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시장에는 전문가들이 버티고 있는 진지가 구축됐고 국제투기자금이 공격할 수 없는 난공불락이라는 모습을 국제금융시장에 보여줘야 합니다. -외환위기 당시와 비교해 현재 정책 당국에 대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우선 우리 경제가 살 수 있다는 청사진을 내놓을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줘야 합니다. 두번째로 각 부문별로 위기관리에 강하면서도 장기적인 안목을 지닌 전문가를 기용해야 합니다. 세번째, 일관된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정부가 확고한 원칙을 지키면 시장도 따르지만 정부가 흔들리면 시장도 춤을 춥니다. 요컨대 정부는 국제공조하에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정책을 세워 신속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재정에 있어서도 고용과 투자촉진 등 필요한 부분은 늘리되 불필요한 부분은 과감하게 절감하는 솔선수범을 보여야 하겠습니다. 물론 기업은 기업대로 위기극복을 위한 지혜를 모으고 가계는 해외여행을 억제하는 등 온 국민이 위기극복에 동참해야 합니다. 정부와 기업ㆍ가계 등 경제주체 간에 위기극복을 위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의 리더십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대통령 혼자만이 아니라 여야 지도자를 포함한 포괄적인 리더십이 중요합니다. 또 정부에는 행정부는 물론 국회와 사법부도 포함됩니다. 특히 민주화 이후 행정부의 힘이 국회로 많이 넘어갔는데 이제 국회가 그 힘을 발휘해줘야 합니다. 여야는 이번 국감 때도 쌀 직불금 문제로 시간을 다 보냈는데 그럴 상황이 아닙니다. 여야가 함께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국민들도 희망을 갖게 되고 경제도 정상화될 것입니다. -정부 정책이 중요하지만 투자와 일자리 활성화를 위해서는 기업이 나서야 하는데요. 재계에 오래 몸담으신 분 입장에서 어떻게 기업들을 독려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기업은 이익이 보여야 투자를 합니다. 우선 기업들에 일관된 신호를 줘야 합니다. 지금 기업들은 대부분 현금을 확보한 상태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규제를 풀고, 투자를 막는 허들은 제거해야 합니다. 또 지금 중소기업 상황이 매우 심각한데요. 대기업이 투자를 줄이기 시작하면 중소기업은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정부가 투자 활성화 정책을 하나하나 실행해 믿음을 주기 시작하면 그 영향이 중소기업에까지 미치게 될 것입니다. -최근 시장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분석도 나오는데요. ▦시장주의에 대한 회의적인 주장도 나오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정부와 시장의 투쟁에서 늘 이긴 것은 시장이었습니다. 정부는 시장이 왜곡됐을 때 잠시 개입해 교통정리하는 역할에 그치고 그 문제가 해결되면 시장이 또 힘을 얻게 됩니다. 시장경제의 틀은 바뀌지 않습니다. ◇약력 ▦41년 경남 진주 ▦서울대 경제학과 ▦한양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박사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이사 ▦제일제당 이사 ▦동서투자연구소장 ▦한국능률협회 부원장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경희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중국 옌볜 과학기술대 명예교수 ▦전경련 상임고문 ▦현 서강대 총장 ▦제14대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 "공교육 정상화, 혁명적 변화 필요"
학원강사보다 우수한 교사 확보등 소신 피력 손병두 총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기업 입장을 대변해 '재계의 대변인'으로 불린다. 지난 2005년 서강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했고 올 4월부터는 14대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직을 겸임하면서 한국 교육의 선진화에 앞장서고 있는 '교육인'이기도 하다. 손 총장은 화제가 교육 문제로 옮아가자 경제를 논할 때와는 또 다른 열정으로 우리 교육에 대한 비전을 풀어냈다. 그의 최대 관심사는 공교육 정상화이다. 손 총장은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켜 사교육 없이도 대학에 갈 수 있는 제도를 만들라는 게 대통령의 당부이자 교육의 과제"라고 말했다. 학교 공부만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기 위한 최우선 조건으로 "학교 교사가 학원 강사보다 우수해야 한다"고 손 총장은 강조했다. 교사 평가와 재교육을 통해 교사의 능력을 전반적으로 향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에서도 입시기준의 변화가 필요하다. 입시에서 내신ㆍ수능ㆍ논술뿐 아니라 학생의 자질과 잠재력 등을 종합적 기준으로 삼아 학생을 선발하는 '입학사정관제' 도입이 그것이다. 손 총장은 "수능 과목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오히려 몇 과목만 공부하는 부작용을 야기해 공교육을 망가뜨릴 수 있다"며 "학교 공부 외에 리더십과 봉사활동 등을 포괄적으로 평가해 다양한 학생을 뽑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돼도 제대로 시행되려면 국민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손 총장은 설명했다. 각 학교가 정한 룰에 따라 자율적으로 학생선발을 하면 국민들이 이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손 총장은 "일단 학생 선발이 이뤄진 뒤에도 학부모가 항의를 하는 게 걱정되는 부분"이라며 "창의력 있는 학생 선발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앞으로 대교협 이사 및 교육감들과 함께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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