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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금융계의 큰손이자 헤지펀드의 대부로 불리는 조지 소로스(78) 소로스 펀드매니지먼트 회장이 ‘슈퍼 버블(Super-bubble) 붕괴론’으로 다시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지난달 출간된 자신의 저서 ‘금융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가 진행 중”이라며 “지난 25년간 진행된 슈퍼버블이 붕괴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현재 미국 주택시장의 거품에서 시작된 금융시장의 위기는 기축 통화인 달러를 기반으로 지난 몇 십년 간 지속된 글로벌 유동성 호황의 끝에 와 있다는 분석이다. 소로스 회장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세계 경기침체가 장기간 진행될 수 있다”며 “주택가격이 예상보다 더 가파르게 떨어져 대공황은 아니더라도 일본식 장기불황은 얼마든지 올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에 앞서 “국제유가에 투기라는 거품이 끼어있다”며 “상품시장은 언젠가 터질 수 밖에 없는 거품 상태에 있다”고 지적했다. 소로스 회장의 슈퍼 버블론은 자신이 직접 고안한 재귀(再歸)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재귀이론(Reflexivity theory)은 금융시장의 참여주체가 서로 상대방의 행동을 예측하면서 선제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시장의 끊임없는 변화와 상호작용, 역동성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금융시장은 예상과 전망의 영역이 아니다”며 “생물처럼 움직이고 진화하기 때문에 예측하기 보다는 대응하고 적응하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소로스가 금융시장의 위기를 주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지난 1987년 발표한 ‘금융의 연금술’, 1998년 발표한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에서 금융위기로 인한 경제적 재앙을 잇따라 경고했다. 소로스 회장에 대한 세상의 평가는 ‘세기의 투기꾼’, ‘자본주의의 악마’부터 ‘20세기의 연금술사’, ‘박애주의 실천가’까지 극과 극으로 엇갈린다. 지난 1997년 태국 밧화의 폭락에서 시작된 아시아 외환시장의 위기가 퀀텀펀드 같은 헤지펀드들의 ‘핫 머니’ 때문에 촉발된 것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는 그를 자본주의의 악마라고 부르면서 통화위기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그는 투자를 통해 얻은 막대한 부를 자선사업을 통해 나누며 약소국을 대변해 목소리를 높이는 사회활동가로도 유명하다. 소로스가 세운 자선단체 ‘오픈 소사이어티’는 전 세계 50개국에서 활발한 자선활동을 펼치며 해마다 4억 달러이상을 기부한다. 그는 보스니아 내전 당시 군사정권에 저항했던 시민들을 위해 5,000만 달러를 지원했다. 그가 활발한 자선활동을 벌이는 배경은 어려웠던 어린시절에서 찾을 수 있다. 소로스 회장은 헝가리 출신 유태인으로 독일 나치의 대량 학살 위협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뒤 영국으로 탈출했다. 영국에서의 생활은 그가 훗날 “생애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절”이라고 회상할 정도로 고난과 역경의 나날이었다. 그는 철도 역 짐꾼, 여행 세일즈맨, 웨이터, 마네킹 조립공장 직원 등을 거쳤다. 그러나 그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런던경제대학(LSE)에 진학, 세계적인 석학 칼 포퍼에게서 배움을 얻는다. 포퍼 교수는 반전체주의, 반마르크스주의 성향의 과학철학자로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저서로 유명하다. 소로스의 자선단체 이름도 여기서 따왔다. 1956년 미국으로 건너가 월스트리트에 정착한 소로스는 재귀이론을 바탕으로 한 고위험, 고수익 투자방식으로 승승장구하며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가 1969년 짐 로저스와 함께 세운 퀀텀펀드는 1만 달러로 시작해 20년 뒤 2,100만 달러 규모로 성장, 헤지펀드의 교과서로 불린다. 소로스의 퀀텀펀드는 지난 1992년 10월 영국 파운드화 위기 당시 환 투기를 통해 1주일 만에 10억 달러에 달하는 차익을 챙기며 영란은행의 항복선언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후 그의 발언 및 행동은 국제 금융계의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그는 막강한 정보력과 날카로운 분석력, 그리고 엄청난 자금 동원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분야까지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그의 말 한마디에 투자자들의 심리가 좌우되고 시장의 흐름 자체가 바뀐다. 특히 유태계인 그의 파워는 미국 내에서 막강하다. 그는 마약, 교육 등과 같은 중대 이슈에 대해 미국 정부의 정책을 변화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소로스 회장은 지난 2004년 미국 대선에서는 사재를 털어 부시 대통령 낙선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뉴스위크지는 소르스 회장을 표지 인물로 싣고 “소로스가 ‘부시 때려잡기(Beat Bush)에 나섰다”며 그의 정치실험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소로스 회장은 90억 달러의 재산을 소유, 올해 미 경제지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 부자순위에서 99위에 오르는 등 막대한 부를 보유하고 있지만 자선사업과 겸손한 사생활로 늘 화제를 몰고 다닌다. 특별한 비즈니스 미팅이 없을 때는 늘 코르덴 바지에 낡은 검은색 가죽가방을 들고 해외 투자여행을 간다. 소로스 회장은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 처음 만나 투자를 요청한 해외 투자자가 바로 그였다. 이 때의 인연으로 그는 1999년 유동성 위기에 빠진 서울증권을 인수하기도 했다. 두 번 이혼한 그의 현재 부인은 한국계 재미 바이올리니스트 제니퍼 전(46)이다. 지난 1998년 처음 만난 것으로 알려진 두 사람은 2002년 한 음악회에서 우연히 재회, 사랑을 가꾸어 오다 2006년 결혼식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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