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Culture & Life] 손진책 국립극단 예술감독

愛人정신이 연극의 기본… 먼저 세상에 대한 이해 필요하죠



연극을 연예계 진출 수단 삼는 몇몇 젊은 후배들에 안타까움 실리 찾기보다 꿈·열정 빠져보길
공연작품 5배 늘어 연 20여편 유료관객 점유율도 80%로 급증
국립극단 3년만에 안정궤도 이젠 전용극장 마련 힘쏟을 것


서울역 인근 옛 기무사 수송대터. 빨간색 담장이 눈에 띈다. 휑했던 부대 차고는 이제 양질의 연극을 일년 내내 올리는 호평 받는 '국립극단' 공연장이 됐다. 지난 2010년 7월 재단법인으로 새롭게 출범한 국립극단은 3년여의 기간에 혁혁한 성과를 쌓아왔다. 한 해 서너 작품 공연이 고작이었던 예전과 달리 지난해에만도 21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올해는 지난 3월부터 5월 말까지 극단이 제작해 선보인 연극 5편의 평균 유료객석 점유율이 80.4%에 달할 정도로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이는 재단법인 출범 이후 선보인 2011년 첫 시즌 점유율(46%)보다 34.4%포인트나 높아 양적·질적 성장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국립극단의 약진에는 손진책(66·사진) 국립극단 예술감독의 온화한 카리스마와 탄탄한 내공이 한 몫을 했다. 1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 사무실에서 손 감독과 마주했다. 그의 연극인생, 국립극단 수장으로서 걸어오고 걸어갈 길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가 오고 갔다.

◇국립극단에 숨결 불어넣기

손 감독의 지휘로 운영된 국립극단이 지난 3년간 적지 않게 약진했지만 시작부터 탄탄대로는 아니었다. 들쑥날쑥한 시스템을 안정시킬 수 있는 매뉴얼을 마련하기까지 덜컹거리는 요소도 많았다. 가장 시급했던 문제는 국립극단의 '브랜드화'였다.

"그간 주변과 소통이 잘 안 됐죠. '국립극단 연극은 믿고 봐도 된다'는 신뢰(credit)가 없었습니다. 우선 재단법인 설립 이후 예술감독을 맡고 나서 그야말로 국민에게 돌려주는 극단, 한국 연국을 대표하는 극단을 만들어야겠다는 목표부터 세웠습니다. 60여년의 역사는 잠시 접어두고 새롭게 출범한다는 이미지를 심는 데 총력을 다했죠."

전국 각지의 연극영화과 수는 70여개가 넘고 매년 졸업생은 쏟아져 나오지만 이들을 제대로 수용할 양질의 연극무대는 많지 않았다. 손 감독은 인재 풀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장을 만들도록 해마다 20편에 달하는 연극을 제작했다. 이 같은 다작(多作) 전략은 연극인에게 상대적으로 풍성한 기회를 선사함과 동시에 관객에게 국립극단을 각인시키는 데 효과를 발휘했다. 그렇게 손 감독 취임 이후 어느덧 2년8개월여의 시간이 흘렀다. 국립극단은 어느 정도 안정궤도에 올랐고 손 감독은 오는 11월까지 남은 임기까지 취임 초기 쇄신을 위해 잠시 접어뒀던 국립극단 60여년의 역사를 다시 한데 묶는 데 시간을 쏟을 계획이다.

"2010∼2012년에 볼 수 없던 '신스(Since) 1950'이라는 문구를 올해 상반기 공연 포스터와 프로그램북에 넣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지난 국립극단의 역사와 현재의 모습을 연결할 시점이 온 거죠. 또 학술출판부를 만들어 극단 출범부터 현재까지 극단의 63년사를 집약한 책도 출간할 계획입니다. 모든 기록을 남기고 활동이 기록돼야 훗날 거기서 담론도 생산되고 국립극단이 말 그대로 한국 연극의 산실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손 감독의 발목을 잡아 끄는 몇 가지 아쉬움도 남아 있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시즌단원제 도입' '전용극장 마련' 등은 향후 극단이 해결해야 할 미완의 숙제다.

"국립극단 소속 배우들로만 무대를 꾸미는 것은 과거를 답습하는 데 그칠 뿐 이상적인 구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국립극단 정단원은 누가 뭐래도 이견이 없는 한국 대표급 연극배우를 엄선하고 나머지는 시즌별 작품에 맞는 배우를 해마다 캐스팅해 운영(시즌단원제)하거나 오디션으로 뽑는 등 세 시스템이 정비례하는 이상적 구조를 만드는 게 필요하죠. 또 선진 국립극단 수준에 이르려면 작품개발을 위한 인큐베이팅 공간이라 할 수 있는 소극장 판과 백성희장민호극장 외에 전용극장이 마련돼야 합니다. 문화를 불요불급(不要不急)으로 여기는데 '문화융성'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이런 부분도 지나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용극장이 없는 국립극단은 현재로서는 11월에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재개관하는 국립극장 달오름극장(427석 규모)을 국립창극단과 함께 공동극장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11월19일∼12월8일)' '혜경궁 홍씨(12월14∼29일)' 등 두 작품이 이곳에서 공연된다. 오는 2015년까지 한시적으로만 이곳을 극단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

◇40여년 외길 연극인생

무뚝뚝하지만 속정 깊은 경상도 사내. 손 감독의 고향은 경상북도 영주다. "종합예술과도 같은 연극에 매료됐다"는 그는 40여년의 세월을 곁눈질 한번 없이 오롯이 연극인으로만 살았다. 그는 '연극인은 배고픈 직업'이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늘 진실하게 살면 하늘이 먹여주기에 어떤 꿈을 갖고 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연극에 매진할 수 있었던 데는 아내의 내조가 큰 힘이 됐다. 손 감독의 아내는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이다. 한 일간지 기고에서 김 예술감독은 "남편은 꿈을 먹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런 남편에게 삶을 위해 꿈을 접으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일상생활을 책임지는 건 언제나 내 몫이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밥벌이 수단, 생활인으로서가 아닌 손 감독이 예술적 감각을 맘껏 펼칠 수 있는 그야말로 '뼛속까지' 연극인으로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아내가 든든한 버팀목이 됐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손 감독은 "애인(愛人)정신, 따뜻한 마음으로 악수하고 포옹하는 게 연극"이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본질보다 실리를 먼저 계산하는 몇몇 젊은 연극인들, 연극을 단순히 연예계 진출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혹자들의 모습에 누구보다 안타깝고 마음이 아리다. 그럼에도 아직 꿈 많은 열정의 연극인을 위해 그는 여전히 따뜻한 조언을 건넨다.

"모든 것을 숫자로 얘기하는 시대에 연극만큼은 인간의 내면을 얘기하고 그 소리에 집중하기에 존재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재적인 연기력, 연출력에 앞서 이 세계에 대한 나름의 통찰과 이해가 먼저 필요합니다. '연극을 통해 내가 과연 뭘 얻을 것인가'보다 연극인으로서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봤으면 합니다. 연극을 거쳐가는 플랫폼으로 여기는 이와 연극의 본질을 꿰뚫고 임하는 이와는 출발부터가 다르죠. 이것저것 실리를 따지기에 앞서 우선은 연극이라는 마당에 자신의 몸을 푹 담가보세요."

He is…



▲1947년 경상북도 영주

▲1970년 서라벌예술대학 연극과

▲1973년 극단'민예' 창단동인

▲1982∼1983년 영국 로열셰익스피어컴퍼니 연수

▲1982∼1986년 극단'민예'대표



▲1986년 극단 '미추' 창단

▲1988년 제24회 한국백상예술대상 연출상(지킴이)

▲1989년 제25회 한국백상예술대상 연출상(오장군의 발톱)

▲1994년 제30회 한국백상예술대상 연출상(남사당의 하늘)

▲1994년 국제극예술협회 부회장

▲1998∼2000년 서울연극제 예술감독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식 총 연출

▲2003년 제13회 이해랑연극상

▲2008년 제17대 대통령 취임식 총연출

▲1986∼2010년 극단'미추' 대표 겸 예술감독

▲2010년 국민훈장 목련장 수훈

▲2010년∼재단법인 국립극단 예술감독


한류 지속위해 국악·클래식 등 순수예술 지원 늘려야



가시적 결과물 집착하기보다 탄탄한 문화토양 만들기 중요
한·중·일 활발한 교류협력 펼쳐 동양적 가치 확장에 힘 모을 때


박근혜 정부는 출범과 함께 '미래 먹거리'로 문화를 내세웠다. 경제부흥ㆍ국민행복ㆍ평화통일과 함께 문화융성은 정부의 4대 정책기조 중 하나다. 지난 19일 대통령직속 문화융성위원회도 출범했다. '문화'에 방점을 찍은 '크리에이티브 코리아'가 본격적인 행보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문화융성의 과정은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삽시간에 나오는 결과물이 아니다. 단순히 수익창출을 기대하는 것에 앞서 양질의 콘텐츠가 생산될 수 있는 탄탄한 문화적 토양이 형성돼 있어야 한다.

손진책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돈만 되면 뭐든 된다는 생각은 안일하다"며 "스티븐 스필버그 작품 한 편이 국내 자동차 몇 년 수출량과 맞먹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세계적 거장 감독 스필버그가 탄생할 수 있었던 문화적 바탕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는 게 문화융성의 우선과제"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경제는 기적이 될 수 있지만 문화는 기적이 될 수 없다. K팝 등 당장 가시적인 결과물이 나오는 데만 집중 투자하는 모양새인데 지속적인 융성을 위해서는 국악·클래식·무용·연극 등 순수예술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훗날 모든 분야에 역량을 불어넣을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손 감독은 문화융성을 위해 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 3국의 활발한 교류협력에도 방점을 찍었다. 그는 "자라날 때부터 서구 위주의 교육에 익숙해서인지 어느 때부터 우리 문화에도 서구지향적인 모습이 한껏 깃들어 있다"며 "그러나 서구의 여타 국가들은 역으로 그들의 합리성에 지루함을 느끼고 아시아적 문화가치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럴 때일수록 한자문화권이 갖는 동질성을 바탕으로 한중일 3국이 동양의 문화가치를 널리 확장시키기 위해 힘을 모을 때"라고 강조했다. 손 감독은 "협력과 동시에 공연시장 규모는 물론 문화적 잠재력이 상당한 중국 시장을 더욱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며 "주도하지 못하고 휩쓸리면 그들 문화에 한순간에 잠식 당할 수 있으니 우리의 문화적 역량을 탄탄하게 쌓아 올려 내실 있는 교류협력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