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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서태후 밥상엔 항상 120가지 요리가

■서태후와 궁녀들(룽얼 구술, 진이ㆍ선이링 지음, 글항아리 펴냄)


19세기 후반 중국의 최고권력자였던 서태후의 생전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노(老) 궁녀의 말을 재구성해 서태후가 권력을 어떻게 누렸는지를 기록한 보고서다.

중국 자금성 저수궁에서 서태후를 모셨던 청 황실의 마지막 궁녀 룽얼(榮兒)이 구술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룽얼은 13살에 궁에 들어간 뒤 8년간 서태후에게 담배 올리는 일을 했고 8국 연합국의 침입으로 자금성이 함락돼 서태후가 광서제와 함께 시안으로 피난할 때도 동행할 정도로 서태후가 아꼈던 몇 안되는 궁녀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지체 높은 황태후였지만 26, 27세에 과부가 돼 극도의 사치를 누렸던 서태후. 그의 정무는 물론 조카인 광서제에 관한 일화, 청나라 왕실의 은밀한 이야기 등 궁중생활들이 묘사돼 있다.

서태후의 일과와 식습관, 방의 모양과 청소법에서 궁녀들이 입궁해서 배치를 받고, 먹고 자고 입는 모든 습관을 교육받는 법, 잘못했을 때의 체벌과 태감과의 관계, 외모를 가꾸는 법까지 상세하게 소개돼 있어 19세기 후반 중국왕실의 속살을 엿볼 수 있다.



만년의 서태후를 지켜봤던 궁녀의 눈에 비친 서태후의 삶은 호사스러웠다. 서태후는 2인용 침대보다 넓은 온돌 침대에서 잠을 잤으며 도마뱀붙이가 새겨진 단향목으로 만든 국보급 요강을 사용했다. 식사 때면 매번 120가지가 넘는 요리를 차려놓고 먹었으며 같은 음식은 세 숟가락 이상 뜨지 않았다. 서태후는 주변생활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아름다움을 중시했던 서태후는 매일 아침 흰 목이버섯을 달여 먹었다. 달인 흰 목이버섯을 자주 먹으면 얼굴이 늙지 않고 영원히 젊음을 유지한다는 속설을 믿었던 것이다. 서태후를 보필하는 궁녀들의 중요한 직무 중 하나도 자신의 피부를 가꾸는 일이었다. 뭐든 남보다 뛰어나야 했던 서태후는 궁녀들을 자신의 장식품이라 생각했고, 궁녀들은 다른 왕족의 궁녀보다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항상 피부를 달걀 흰자위처럼 부드럽고 매끄럽게 가꿔야 했다. 저자는 "서태후는 외로움과 고독감이 못 견디게 밀려올 때면 상소문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고 기록한다.

그러나 서태후와 광서제가 시안으로 피난을 하던 날은 몇 개만 싸가지고 궁을 빠져나와 일반 백성으로 위장했던 기억, 피난 와중에 들판에서 화장지 없이 야생 마잎으로 용변을 해결했던 회고는 서태후의 화려했던 지난날과 대조를 이룬다. 룽얼은 "궁중은 조그마한 즐거움도 없는 곳"이라고 회고하며 글을 배울 수 없고 밤에 잠을 잘 때는 똑바로 눕지 못하고 몸을 옆으로 돌려 다리를 구부린 채 자야 했던 궁녀들의 고단한 삶 이야기도 들려준다. 중국에서는 '궁녀담왕록'(宮女談往錄)이란 제목으로 나왔다. 2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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