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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장면
입력2002-08-08 00:00:00
수정
2002.08.08 00:00:00
도요타상사 사건은 85년 일본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당시 32세의 나가노가 증권과 골프 회원권을 미끼로 노년층을 속여 7,500억원을 사취했다.
오사카 시 북구에 있는 나가노 회장 아파트 앞에는 그가 연행되는 장면을 찍으려고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갑자기 두 사나이가 보도진을 헤치고 들어섰다. 경비원의 저지를 물리친 그들은 유리창을 깨고 안으로 침입했다. 앞장선 사나이가 대검을 휘둘러 나가노를 살해했다. 범행한 뒤 그는 피 흐르는 대검을 들고 현관에 나와 "그런 자는 없애 버려야 한다"고 소리쳤다.
텔레비전 카메라는 이 장면을 생생하게 잡아 중계 방영했다. 이 사건이 일으킨 충격파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반사회적 인물을 영원히 제거한 극우파의 사무라이 식 테러의 충격이다. 또 하나는 여과하지 않고 현장 방영한 텔레비전 보도 행태의 충격이다.
보도진이 범행을 제지하지 않고 사진만 찍어 보도했다는 항의가 빗발쳤다.
지난 주말 밤9시 문화방송 뉴스데스크는 살인장면을 여과하지 않고 내보냈던 점을 사과한다고 방송했다.
이틀 전 뉴스테스크와 뉴스24는 아동학대 상담센터에서 상담을 하던 30대 가장이 갑자기 부인에게 달려들어 칼로 마구 찔러 살해하고, 이를 말리는 처남을 찔러대는 장면을 방송했다. 폐쇄회로 텔레비전에 잡힌 자료화면이고 부분적으로 모자이크 했지만 유혈이 낭자한 장면이 뚜렷이 드러났다.
KBS 뉴스9도 이 사건을 보도했으나 흉기로 찌르는 장면은 방영하지 않았다. 시청자 게시판에 오른 많은 항의의 글 중에는 "가족이 시청하는 뉴스 시간에 실제 살인 장면이 방송되어 어린이들이 울음을 터뜨렸다"는 내용도 있었다.
두 사건 모두 텔레비전의 본성을 보여준다. 시청자에게 쾌락을 주는 대신 시청자를 상품으로 변형하는 텔레비전의 본성은 시청률 지상주의로 나타난다. 이데올로기 분석가라 할 수 있는 미미 화이트는 텔레비전 현상을 제작자와 시청자의 변증법적 관계로 본다.
그는 텔레비전과 우리의 관계가 결코 결백한 것이 못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시청자가 될 것에 동의함으로써 관습으로 얽힌 하나의 거대한 제도와 계약을 맺게 된다.
우리가 텔레비전에서 쾌락을 얻는 대신 그 거대한 관습제도는 우리를 상품으로 변형시킨다. 텔레비전은 광고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청자를 판다고 그는 비판했다.
안병찬(경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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