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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천년학

우리네 삶 이야기 뒤로 애잔한 판소리가…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작품 '천년학'은 손맛이 느껴지는 요리 장인의 음식처럼 깊은 맛을 지닌 영화다.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아 첫 맛은 밋밋하지만 음미할수록 깊은 맛이 살아나는 그런 음식의 맛처럼, 2007년의 영화답지 않은 약간은 촌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온 '천년학'은 이내 장인의 깊은 내공으로 관객을 휘어잡는다. 그리고는 인생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을 환기시킨다. '천년학'은 그렇게 요즘 영화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천년학'은 1993년 서울관객 100만 명을 끌어 모으며 전국적인 신드롬을 만들었던 영화 '서편제'를 계승하는 영화다. 하지만 임권택 감독이 제작 초기부터 밝혔듯 '천년학'은 '서편제'의 속편이 아니다. 두 작품은 스토리만 연결될 뿐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서편제가 소리의 절정을 쫓기 위한 소리꾼들의 예술혼에 주목했다면, '천년학'은 우리네 삶 자체를 조망한다. 태어나 자라고, 꿈을 위해 노력하고 좌절하며,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다가 끝내 죽음을 맞는 인간의 모든 삶의 이야기들이 한편의 영화 속에 담겨 있다. 그리고 이 영화가 풀어내는 삶의 이야기 뒤로 애잔한 판소리 가락이 흐른다. "판소리의 감흥과 가사에 담긴 이야기들이 우리네 삶과 어떻게 연결돼 있는 지에 대한 영화"라고 '천년학'을 설명한 임권택 감독의 말이 떠오르는 부분이다. 영화는 주인공 송화와 동호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두 사람의 기구한 인생 역정과 인연을 담담히 풀어나간다. 피가 섞이지 않은 남남이지만 소리꾼 양아버지 유봉(임진택)에게 맡겨져 함께 남매처럼 자란 송화(오정해)와 동호(조재현). 한 사람은 소리를 하고, 또 한 사람은 북을 치면서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을 가지지만 '남매'라는 두 사람의 관계와 밥 한끼 제대로 먹기 힘든 비루한 삶이 두 사람을 가로막는다. 결국 동호는 그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떠난다. 그렇게 서로의 삶이 엇갈리기 시작한 이후 두 사람은 가슴 아픈 잠깐의 만남과 긴 이별을 반복하면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조금씩 멀어진다. 그렇게 몇 년 흐른 후, 아직도 누이에 대한 애잔한 마음을 잊지 못한 동호는 소식이 끊어진 송화를 찾아 나서는데, 어린 시절 기거했던 선학동의 주막에서 주인 용택(류승룡)에게서 자신이 미처 몰랐던 송화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듣게 된다. '진정한 장인은 최고의 물건을 만들기 위해 과욕을 부리지 않는다'는 말처럼 임권택 감독도 '천년학'에서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잔잔히 흘러가는 스토리와 삶의 회한을 담기 위해 의도적으로 어둡게 처리된 화면 모두에서는 오히려 절제가 읽힌다. 손 대중으로만 양념을 넣어도 간이 딱 맞는 요리 장인의 음식처럼 절대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필요한 만큼만 영화적 장치들을 배치한 그의 영화 속엔 '절제와 적당함의 미덕'이 가득하다. 조재현, 오정해, 류승룡, 임진택 등의 배우들도 그런 감독의 의도에 따라 절제된 연기를 펼친다. 물론 영화엔 새로운 혁신은 없다. 이야기도, 화면도, 음악도 모두 우리가 수십 년간 익히 보아왔던 임권택 감독의 그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거장에게서 기대하는 것이 '새로운 무엇'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가 거장에게서 얻고 싶은 것은 그의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농축된 작품이고, 그런 면에서 '천년학'은 충분한 영화적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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