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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초대석/발자취] 30여년 경제계서 동분서주

재계화합등 소리없는 노력그가 경남 진주중을 졸업하고 경복고에 진학한 것은 1956년이다. 홀로 상경해 하숙생활을 시작했으나 두달만에 부친의 사업이 실패하는 바람에 점원이나 가정교사 등을 하며 고학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했다. 그는 "북한산 승가사 밑 자취방에서 겨울한밤 개울에서 얼음을 깨고 빨래하던 시절은 나에게 삶의 의미를 가르쳐준 단련의 시기였다"고 회상하곤 한다. 그는 고학생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의사가 됐을 것이다. 서울의대에 낙방 한뒤 2차로 가톨릭의대에 합격했지만 등록금 마련이 어려워 결국 의사의 꿈을 접어야 했다. 한 독지가의 도움으로 가정교사를 하며 재수끝에 서울대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졸업후 ROTC 2기로 입대한뒤 제대한 1966년 친구의 소개로 입사시험을 치룬 곳이 바로 전경련이다. 그는 전경련 근무시절 가장 보람있었던 일로 자본시장육성법을 추진해 말 법제정(68년)을 이뤄낸 것으로 추억한다. 이후 중앙일보, 동양방송을 거쳐 72년 삼성그룹 비서실로 옮기면서 재계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게된다. 당시 그가 맡은 '삼성경영 5개년 계획(72∼76)'은 삼성의 70년대 청사진을 그려낸 것으로 오늘날 삼성그룹 성장의 가이드라인이 됐다는 평을 받고있다. 특히 삼성항공(당시 삼성정밀)의 시작은 삼성을 방위산업에 참여할수 있게 만든 것으로 그의 공이 컸다고. 10년 가까운 비서실 생활을 끝낸 뒤 제일제당 이사를 거쳐 83년에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조지타운대와 조지워싱턴대학, 메릴랜드대학에서 수학한 후 아더 드 리틀(ADL)대학원에서 우등생으로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치게 된다. 1985년 9월 귀국 한 그는 한국생산성본부(KPC) 상무를 맡아 노사화합을 통한 생산성 향상운동에 동분서주했다. 동서경제연구소 소장과 동서투자자문 사장시절에는 증권실무를 익혔다. 취임 후 78일이라는 최단기 작전으로 2,900만달러의 해외펀드(ADEF)를 아일랜드 더블린 증시에 상장한 것은 자문업계의 신기록으로 남아있다. 90년에는 한양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95년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을 거쳐 97년 2월 전경련 상근 부회장에 선임되면서 첫 직장과 재회했다. 평소 일복이 많다는 그의 말처럼 하루일과는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눈코뜰새 없는 나날이었다. 빅딜로 불리는 7개 사업분야의 구조조정을 비롯하여 기업의 구조조정을 선도했다. 지난 2월 김각중 회장의 2기체제가 출범한 뒤에는 재계화합을 주도하고 정부와 경제계를 잇는 가교로서 전경련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전경련의 변화에는 '소리없이 결실을 이끌어 내는' 그의 남다른 노력이 배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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