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기고/1월8일] 국정원법 늦은감은 있지만…

“간첩을 안 잡는 겁니까? 못 잡는 겁니까?” 지난 정부 시절 야당의 모 국회의원이 국가정보원장을 불러 호통을 쳤다. 당시 국정원장이 어떻게 답변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사실은 두 가지 모두가 정답이다. 첫째는 안 잡았다. 국가정보원은 민주노동당 간부들이 연루된 일심회 사건으로 10명을 검거했다. 그런데 국정원장은 그 사건으로 옷을 벗었다. 간첩 잡는 기관의 수장이 간첩을 잡았다는 이유로 벌을 받는 상황에서 누가 간첩을 잡으려 하겠는가. 해킹위협 등에 노출 안보 불안 둘째는 못 잡았다. 이러한 좌파 일색의 분위기는 공안기관의 해체 또는 축소로 이어졌다.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 800여명이던 보안수사 경찰관은 현재 절반 이하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거된 인원이 2003년 152명에서 지난해에는 15명으로 줄어든 게 안 잡고, 못 잡은 반증이다. 그런데 간첩 잡는 게 국정원의 주임무이던 시절은 이제 옛날이 됐다. 안보위협이 적의 무력공격에서부터 테러ㆍ사이버ㆍ전염병ㆍ환경ㆍ에너지ㆍ산업보안 등 전방위 개념으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 러시아가 그루지야를 침공했을 당시 러시아는 침공전에 해커공격으로 그루지야 주요 기관의 모든 전산망을 마비시켰다. 정부기관은 물론이고 언론ㆍ금융ㆍ교통기관의 기능이 정지됐다. 그루지야의 팔다리를 묶어놓고 시작한 전쟁은 러시아의 일방적인 승리로 싱겁게 끝났다. 지난해 12월29일에는 인도 뭄바이에서 테러가 발생해 170여명이 사망하고 330여명이 부상했다. 최근 미국 LA의 한 교회에는 백색분말이 든 봉투가 배달돼 교회 전체가 폐쇄되는가 하면 9ㆍ11 테러 이후 탄저균 테러로 5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했다. 테러의 공포가 지구촌 곳곳에서 이 시각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2003년 웜바이러스의 감염으로 국내 전산망이 수시간 동안 완전 마비된 적이 있다. 이 사건 이후 국가사이버안전센터를 설립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중앙정부와 군부대 등 주요 국가기관에 대해 하루평균 20만여건의 해킹시도가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그뿐인가. 성형외과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일명 보톡스는 아파트 수돗물 저장탱크에 극소량만 투입돼도 전 주민을 사망하게 할 수 있는 치명적인 약품이다. 그런데도 현실적으로 이러한 독극물을 체계적으로 통제할 법적 장치가 미흡하다. 이러한 국가안보의 전방위적 위협에 대해 선진국들은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미국은 중앙정보국(CIA), 연방수사국(FBI), 국가안전보장국(NSA) 등 주요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장직을 신설하고 국가 대테러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영국은 보안부 산하에 해외정보부 등 안보기관을 총망라한 ‘정부합동테러분석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밖에 프랑스ㆍ독일ㆍ러시아 등도 같은 맥락에서 테러 총괄지휘 체제를 도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이며 핵을 갖고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북한과 첨예하게 대처하고 있는 우리는 이러한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국정원법은 45년 전인 1963년에 개정된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어 이러한 안보상황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한마디로 닭을 잡기도 힘든 칼을 가지고 소를 잡으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정보원의 기능과 역할을 조정하는 법안이 발의된 것은 만시지탄이기는 하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법안은 국가안전보장과 국가이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가정책 수립에 필요한 정보수집과 분석활동을 허용하고 재난과 위기를 예방ㆍ관리하기 위한 정보활동을 가능하게 하며, 최근 중요성이 증가되고 있는 ‘산업기술 유출’ 관련 정보도 안보 차원에서 다룰 수 있도록 명시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너무나 당연하고도 바람직한 내용들이서 많은 국민들이 지지하고 있다. 심지어는 이 법안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일부 의원들조차도 법 개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만 국정원법이 이렇게 개정돼 기능이 확대ㆍ강화될 경우 또다시 과거와 같은 정치개입ㆍ야당탄압ㆍ권력남용 등의 행태가 반복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통신보호법등 통과 서둘러야 이것은 한마디로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그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구더기가 무서우면 구더기를 퇴치할 방안을 모색해야지 장을 담그지 못하게 장독을 깨버려서야 되겠는가. 권력남용의 여지가 있다면 입법과정에서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장치를 보완하면 될 것이다. 모름지기 시대의 흐름과 국민의식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법은 이미 법으로서 존재가치를 상실한 것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수천억원의 첨단 산업기술 유출이 시도되고 있다.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국민들의 피해가 수백억원에 이른다. 9ㆍ11 테러, 탄저균 테러 역시 산 너머 남의 집 일만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안보에 관한 한 여야도, 좌우도 있을 수 없다. 국가를 보위하고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나가자는 데 정략적ㆍ정파적 접근은 더더욱 있을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국가정보원법은 물론이고 함께 논의되고 있는 테러방지법ㆍ통신비밀보호법 등 관련 법의 국회통과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