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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보다 앞선 쿠르간 기마족 문화

■ 인도유럽인, 세상을 바꾼 쿠르간 유목민<br>(라인하르트 쉬메켈 지음, 푸른역사 펴냄)<br>기원전 전투력 앞세워 유럽·亞 정복<br>사실에 허구 더해 드라마처럼 그려



밝은 방 안에서 도망치는 고양이를 잡는 것은 과학, 어두운 방 안에서 고양이를 잡는 것은 철학, 어두운 방 안에서 있지도 않은 고양이를 잡는 것은 종교라는 얘기가 있다. 일반적으로 기록과 고증, 끝없는 연구를 거쳐 체계를 쌓아가는 역사학에 할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인도유럽인에 관한 연구라면 이 중 대략 과학과 철학의 중간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정규 교과과정을 통해 그리스ㆍ로마인에 대해 상세히 배우고 있다. 또 이집트와 바빌로니아, 심지어 고대 게르만인에 대해서도 충분히 많은 사실들이 밝혀져 있다. 하지만 중부 유럽인의 역사에 대해서는 아직도 기원전 400년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유럽인의 역사는 정말 그리스인과 로마인이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한 기원전 800년이나 400년 경에야 비로소 시작됐을까.

아직도 명쾌한 흐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이 고리에 대해 저자는 상상력을 동원한다. 다큐멘터리의 재연 드라마처럼 삽입돼 있지만, 당연히 고고학과 언어학 등으로 정밀하게 연구된 사실을 근거로 몇 푼의 허구를 더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인종학ㆍ인도게르만학 학자이자 행정연구가인 라인하르트 쉬메켈 박사는 한편으로는 독일 현대 정치학과 정당사에 능한 행정연구가이기도 하다. 기자와 변호사를 거쳐 독일 연방공화국 총리실과 대통령실에서 40여년 관료생활을 하며 유럽의 선사ㆍ고대 시대에 관한 저서를 펴내 대중적 인기를 모으고 있다.

특히 저자는 여러 종족간의 관계에 주목한다. 이들이 어디에서 왔으며 기존 주민 및 이웃 종족들과 생리학ㆍ문화적으로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천착한다. 또 이들이 후대에 어떤 문화와 업적을 남겼는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접근한다.

책 제목에도 나오는 쿠르간은 '거대한 언덕', 즉 동부ㆍ중부 유럽 지역에 많은 봉분들을 말하는 것이다. 기원전 4,500~2,000년께 소아시아에서 유래한 농경민족이 발칸반도를 거쳐 북쪽 흑해 북안으로 들어와 기마민족이 되어 유럽과 아시아 각 지역을 정복해 나갔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를 쿠르간 문화라 하고, 이들의 언어가 인도유럽어다. 이 명칭은 언어분포상 서쪽 끝이 유럽, 동쪽 끝은 인도에 달하기 때문이다.



기원전 2,000~1,200년에는 전투 경마차를 활용해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했던 히타이트와 아리안족, 미케네인들이 등장한다. 아리안족은 인도 북서부를 통해 남하하며 원주민인 드라비다족을 아래로 몰아낸다. 그리스 미케네문명의 이오니아계나 아르카디아계 종족들은 그리스 반도로 진출해 크레타를 정복하고 해상무역의 강자로 대두된다.

이후 기원전 1,300~500년 사이의 역사는 문자를 가진 이집트나 그리스와의 접촉을 통해 기록된다. 종전의 강력했던 히타이트 왕국은 일리리아계 종족을 주축으로 한, 미케네 왕국도 원일리리아인을 주축으로 한 여러 계통이 모인 도리아인에 의해 사라진다.

이렇게 흩어지고 모인 종족들이 수많은 도시국가로서 그리스를 이루고, 이를 통합한 것은 종교였다. 제우스를 위시한 올림푸스 신들은 외지인, 데메테르를 위시한 여신들은 원주민들의 신이었다.

그 외에도 키메르족, 스키타이족, 사르마트족, 아시리아왕국, 켈트족, 게르만족 등 다소간 익숙하기도 한 종족과 국가의 역사를 지역별로 관계성 속에서 풀어간다. 그리고 러시아왕국을 이루는 슬라브인과, 외진 지역에 거주해 인도유럽어의 원형을 가장 잘 유지하고 있는 발트인도 다룬다. 3만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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