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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시스템 개조하자] 9부. 성장 이끄는 복지체제로 <4> 갈길 먼 보육환경 개선

'먹고살 만하니까 남성 육아휴직' 그릇된 인식부터 바꿔라<br>육아휴직자 2배 늘었지만 남성비율 2.8% 채 안돼<br>기간 현실적으로 줄이되 의무조항으로 바꿀 필요<br>어린이집 자기자본 상향 수익 목매는 구조 바꾸고 교사 근로환경도 개선을

육아휴직 중인 한 남성이 아들과 함께 출근길에 나서는 부인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육아휴직 활성화와 어린이집 실태 개선 등을 통해 하루빨리 저출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서울경제DB


#부산 수영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로 일하던 김모(32ㆍ여)씨는 태어난 지 20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아이가 시끄럽게 칭얼댄다는 이유로 등을 수차례나 때려 피멍이 들게 했다. 그래도 아이가 울음을 멈추지 않자 짜증이 극에 달한 김씨는 아이 얼굴에 이불을 뒤집어씌워 구석에 내던졌다. 또 일일이 챙기기가 귀찮아 감기에 걸린 아동이 사용한 숟가락을 그대로 다른 아이들의 밥을 먹이는 데 사용하기도 한 김씨는 결국 지난 5월 검찰에 덜미가 붙잡혀 구속 기소됐다.

#한 공공기관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A(34·남)씨에게는 두 살 터울의 두 자녀가 있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데 왠지 모를 자책감이 들었던 A씨는 아내와 육아휴직을 번갈아 사용하기로 했다. A씨는 2008년 6월부터 2009년 5월까지, 또 2011년 8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총 2년을 아이를 돌보기 위해 회사를 쉬었다. 물론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직장 내에서 남성이 육아휴직을 사용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A씨는 "동료들로부터 집이 부자라 먹고살 만하니까 그렇다는 둥, 제정신이 아니라는 둥 온갖 뒷말들이 들려왔다"며 "육아휴직에 대한 수용도가 그나마 높은 공공기관이 이 정도인데 민간기업은 오죽하겠냐"고 하소연했다.

이들 사례는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기르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첫 번째 어린이집 사례가 열악한 보육환경과 인프라를 드러내고 있다면 두 번째 육아휴직 남성의 사례는 여전히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는 보육문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먼저 보육환경의 문제부터 짚어보자. 말 그대로 어린이를 위한 안락한 집으로 기능해야 할 어린이집은 부모의 불안을 가중시키며 갈수록 기피대상이 되고 있다.

실제로 정부가 법 위반 사항을 적발해 행정처분을 내린 어린이집 수는 2009년 739개소에서 2012년 1,715개소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아동·교사를 허위로 등록해 보조금을 부정 수급하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그대로 급식재료로 쓰는 등 위반 사항도 다양했으며 차량 안전관리나 건강진단 실시 등의 사소한 규정도 예사로 무시됐다.

이 같은 어린이집의 도덕적 해이는 수요자의 불편으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일부 어린이집에서 하루 3~4시간만 아이를 맡기는 부모를 선호하면서 맞벌이 부부들이 더욱 애를 먹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무상보육의 확대 시행으로 예전에는 아이를 집에서만 키우던 전업주부들이 짧은 시간 동안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 현상을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현행 영유아보육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어린이집 운영기준에 보면 주 6일 이상 하루 12시간 운영해야 한다.

경기도의 한 학부모는 "몇 달 전 한 어린이집을 찾아가 상담을 하면서 저녁 때까지 아이를 맡겨야 한다고 했더니 '늦은 시간까지 남아 있는 아이는 당신 아이뿐일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오더라"며 "단시간 이용을 대놓고 유도하는 어린이집의 술수에 기가 막혀 뒤도 안 돌아보고 문을 박차고 나왔다"고 털어놓았다.

이 같은 보육환경보다 더 심각한 것은 보육문화다. 육아휴직 사용 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이다. 인력 투입과 투자를 늘리고 제도를 개선한다면 보육환경은 개선될 여지가 있지만 제도가 아닌 관행의 문제가 있는 보육문화는 사회 전반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해결이 요원하기 때문이다.

특히 보육문화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남성 육아휴직자가 대폭 늘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육아휴직자는 6만4,069명으로 2008년(2만9,145명)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전체적으로 육아휴직제도가 우리 사회에서 안착하고 있는 듯 보이는 통계지만 남녀 비중을 뜯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2012년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은 1,790명으로 2.8%가 채 안 됐다. 우리나라의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은 부부가 각각 1년씩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고 육아휴직 신청을 사업주가 거부할 경우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를 내도록 하고 있지만 실제 형사처벌 사례는 전무한 실정이다.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육아휴직 경험이 있는 남성을 대상으로 시행한 심층면접에서 B씨는 "육아휴직을 6개월간 사용하고 복귀하니 근무평정이 바닥에 가 있더라"고 털어놓았다.

제도는 완비돼 있지만 한국 특유의 조직문화와 시선을 우려해 대다수 남성들이 육아휴직 사용을 꺼릴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 같은 보육환경의 미비와 뒷걸음질치는 보육문화는 저출산 문제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10년째 1.3명 언저리를 맴돌고 있으며 이는 아일랜드(2.07명), 프랑스(1.99명), 스웨덴(1.98명), 영국(1.98명), 미국(1.93명) 등의 해외 선진국과 비교하면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저출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하루빨리 보육문화를 바꾸고 환경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우선 어린이집의 경우 자기자본비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려 수익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이 나온다. 서문희 육아정책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어린이집의 인가 기준은 '부채비율 50% 미만'인데 갚아야 할 빚이 있다 보니 급식이나 교사 처우 등 전반적인 서비스의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며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인가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서 위원은 또 "교사의 열악한 근로환경도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며 "처우개선뿐만 아니라 보조교사 등 인력충원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육아휴직 활성화와 관련해서는 인센티브 제공, 기간의 현실적 재조정 등의 방안이 제시된다. 홍승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맞벌이 부부가 번갈아가면서 육아휴직을 사용할 경우 40%에 불과한 임금보전율을 높이는 등의 인센티브 제공을 전향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대신 남성의 경우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육아휴직 기간을 현행처럼 1년으로 두기보다 해외 선진국처럼 기간을 현실적으로 줄이더라도 의무조항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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