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글로벌 경제지도에 지각변동을 불러왔던 '플라자 합의'가 체결된 지 30주년을 맞는다. 때마침 30년 만에 '슈퍼 달러'가 귀환한 가운데 환율전쟁, 이른바 '이웃나라 거지 만들기' 정책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지난 1984년 당시와 다른 점도 있다. 당시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던 미국은 일본의 팔을 비틀어 달러화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글로벌 환율 시장도 안정시켰다. 하지만 지금은 국제공조의 틀이 무너지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교묘한 방식의 '스텔스'식 환율전쟁이 난무하는 등 글로벌 경제가 공멸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환율시장, 30년 전 데자뷔인가=현재 미 달러화 가치는 1970년대 이래 3차 대세 상승기에 접어든 상황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집계하는 미국의 주요26개 교역국 통화 대비 가중 달러 지수는 2013년 말 이후 20%나 급등했다. 2년간의 기간만 놓고 보면 1984~1985년 32% 폭등 이후 최대 상승폭이다. 미 달러화 가치는 연준의 도미노 기준금리 인상의 여파로 1978~1985년, 1995~2002년에 각각 50%, 35% 급등한 바 있다. 더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 경제가 '나 홀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데다 통화정책의 디커플링(비동조화)이 진행되면서 달러화는 더 강세를 띨 가능성이 높다.
강달러는 30년 전과 마찬가지로 미국 경제의 두통거리로 등장한 상황이다. 폴 볼커 전 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1979년 4월부터 10%였던 금리를 1981년 5월 20%로 올렸다. 그 여파로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미 경기는 위축됐고 외국인 자금 유출에 중남미 국가들은 줄줄이 외환위기를 맞았다.
지금도 강달러는 수출 둔화, 인플레이션 하락 등을 촉발해 미 경제 회복세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주 미 연준의 금리동결도 중국발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에 따른 달러 강세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연준의 금리 인상 연기는 또 다른 환율전쟁을 촉발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크레디아그리콜의 발렌타인 마리노프 주요10개국(G10) 외환 수석은 "연준의 금리 동결은 글로벌 환율 시장에 더 큰 충격의 파고를 몰고 올 것"이라며 "일본은행(BOJ), 유럽중앙은행(ECB)이 자국 통화 약세를 위해 추가적인 완화 정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중국이 경기가 둔화된 가운데 달러가 약세를 보일 경우 위안화 가치를 추가 절하하면서 시장이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경고도 속출하고 있다.
◇리더십 약화에 위기 방어막도 흔들=미국의 고민은 플라자합의 때와는 글로벌 경제 사정이 정반대라는 점이다. 유럽ㆍ일본ㆍ중국ㆍ브라질 등 대다수 국가의 경우 경기 둔화에 시달리고 있어 어느 정도의 통화 약세 유도는 불가피하다는 게 국제사회의 여론이다.
이달 초 터키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도 중국의 위안화 평가 절하에 대해 미국이 견제구를 날린 것과 달리 대다수 국가는 "시장 결정적인 환율체계 도입과 경제개혁을 위한 것"이라며 옹호 입장을 나타냈다. 플라자합의 시절 주미 일본대사관의 재무관이었던 우츠미 마코토는 "연준이 일방적인 달러 강세에 대해 극도로 조심하고 있지만 글로벌 정책 공조는 이미 사라졌고 각국의 리더십도 명확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 하루 외환 거래액이 5조3,000억달러에 이르면서 과거처럼 직접적인 외환시장 조작은 불가능한 실정이다. 외환ㆍ주식ㆍ채권 등이 서로 복잡하게 연결돼 있는데 잘못 건드렸다간 자칫 금융위기가 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플라자합의 이후 일본이 거품 증가 등으로 '잃어버린 20년'을 겪은 것을 본 다른 나라들이 힘이 빠진 미국의 압력을 받아들일 리도 없다.
문제는 글로벌 환율전쟁이 악순환에 빠진데다 달러화 강세가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경제에도 위협 요인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무역 적자와 다른 나라의 무역 흑자로 대비되는 불균형 현상, 이른바 '글로벌 임밸런스'가 더 심화될 경우 국제 금융시장이 주기적인 위기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최근 보고서에서 "달러화 가치는 펀더멘털에 비해 약간 고평가돼 있고 글로벌 임밸런스는 글로벌 성장에 방해물"이라고 지적했다. 플라자합의 당시 교유텐 도요 일본 재무성 국제금융국장은 "지금은 위기 예방을 위한 의견 교환이 없다는 점이 우려된다"며 "효율적인 공동 대응 계획이 없을 경우 한 나라의 위기는 즉각 글로벌 위기로 바뀔 수 있다"고 우려했다.
플라자합의
1985년 9월22일 미국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G5(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재무장관들이 외환시장 개입에 따른 달러화 강세를 시정하도록 결의한 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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