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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리스크 현장을 가다] <4> 경제회생 불안한 일본

돈풀기로 소비만 꿈틀… 3개의 화살 되레 부메랑 될 수도<br>과도한 엔저, 물가상승 불러 가계·기업 발목<br>나랏빚 해결없이 지출 늘리면 재정위기 빠져<br>'발등의 불' 구조개혁 실패땐 다시 나락으로

지난 6일 일본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이세탄백화점 앞을 쇼핑객들이 지나가고 있다. '아베노믹스'에 힘입어 일본인들의 소비 심리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경제구조 개혁, 소비세 인상 등 풀어야 할 문제도 여전히 산적해 있어 일본 경제를 낙관하기에는 이르다는 지적이다. /이상훈기자


일본 도쿄의 대표적 번화가인 신주쿠 거리에 위치한 이세탄백화점 본점에 들른 것은 지난 6일. 평일인데도 백화점은 쇼핑객들로 붐볐다. 고가의 의류와 액세서리를 둘러보는 일본 여성들과 중국ㆍ유럽 등지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들이 북적거리는 백화점에서는 '디플레이션'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활기가 느껴졌다.

백화점에서 만난 한 대기업 도쿄 주재원은 "소비심리가 물밑에서 움트고 있는 것 같다"며 "주변 일본인들의 백화점 쇼핑도 늘었다고 한다"고 귀띔했다.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일본인들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베노믹스'에 대한 기대심리다. 지난해 12월 아베 신조 총리가 취임한 후 펼쳐온 '돈 풀기' 정책에 20년간 움츠려 있던 일본 경제는 마침내 꿈틀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 경제 회생의 기대가 집중되고 있는 아베노믹스는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리스크이기도 하다. 아베 정권의 돈 풀기 정책과 그로 인한 엔저현상의 이면에는 디플레이션 탈출에 가장 필요한 임금인상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엔저로 생활물가만 오르는 '나쁜' 인플레이션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핵심으로 여겨지는 구조개혁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해 경기회복이 '반짝' 현상에 그칠 가능성도 크다. 무엇보다 내년 4월로 예정된 소비세 인상 여부는 일본 경제의 앞날에 심각한 변수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송영식 삼성생명 도쿄주재사무소장은 "이제 일본 경제가 막 기지개를 켜고 있지만 아직은 경제가 실제로 좋아졌다기보다 막연한 기대감에 기댄 것"이라며 "아베노믹스가 기업의 고용이나 근로자 임금인상으로 연결되지 않을 경우 상황이 이전보다 악화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살아나기 시작한 소비심리=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니클로 같은 중저가 캐주얼 매장만 찾았던 일본 소비자들의 발길을 백화점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최대 백화점인 미쓰비시이세탄의 3개 주력점포의 100만엔 이상 고가 장신구 매출은 지난 4~6월 전년동기 대비 60%가량 늘어났다. 일본 리서치종합연구소의 후지와라 유지 주임연구원은 "구조조정이나 임금하락으로 위축됐던 소비자들의 소비심리가 호전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소비심리 개선은 지표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올 3월 일본의 소비자태도지수는 44.8로 2007년 5월 이후 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일본 음식서비스협회가 발표하는 4월 내점고객 수도 전년 대비 2.0% 올랐다. 도쿄의 한 회사원은 "요즘은 택시 잡기가 이전보다 확연히 힘들어졌다"며 "택시 이용객은 확실히 늘어난 것 같다"고 전했다.

최근 어닝시즌의 기업실적은 일본 경제 회생에 대한 기대를 한층 고조시켰다. 3월 결산법인인 668개 일본 기업의 1ㆍ4분기(4~6월) 세전이익은 전년 대비 42% 늘었다. 도요타 등 수출기업을 비롯해 전자업체, 소매ㆍ유통 등 내수기업들도 전반적으로 호조를 나타냈다. 아베 정권이 실행한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온기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다. 아직은 경제지표 개선 정도가 약하고 실적개선이 본격적인 임금인상으로 연결된 기업도 없어 아베노믹스 효과가 본격화했다고 보기 어렵다. 가처분소득이 올라야 소비도 늘어난다는 점에서 현재의 소비심리 개선에는 '부의 효과(wealth effect)'가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일본인들의 소비심리를 안정적으로 확산시켜 경제를 본격적인 선순환의 궤도로 올려놓을지, 또 한번의 실패로 귀결돼 경제를 더 깊은 불황의 골로 떨어뜨릴지, 아베노믹스의 진짜 시험은 지금부터다.

◇엔저ㆍ재정ㆍ구조개혁…'세 개의 화살'이 모두 부메랑 될 수도=일본 경제를 견인하고 있는 아베노믹스의 '세 개의 화살'은 양적완화ㆍ재정지출ㆍ구조개혁이다. 그러나 이 3대 축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경제를 나락으로 밀어넣을 수 있는 최대 리스크 요인이기도 하다.

우선 대규모 양적완화에 따른 엔저와 물가상승이 기업과 가계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 엔저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일본에서는 전기요금 인상은 물론 밀가루ㆍ빵ㆍ식용유ㆍ마요네즈 등 식료품 가격인상이 이어지고 있다. 휘발유 가격은 2개월 전보다 리터당 5엔 정도 올랐다. 반면 소비의 근간이 되는 소득수준은 제자리걸음이다. 최근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안이 추진되고 있기는 하난 자칫 아베노믹스가 경제성장 없이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귀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재정문제는 특히 심각하다. 국내총생산(GDP)의 2.5배에 달하는 국가부채를 해결하지 못한 채 재정지출을 늘린다면 일본 경제가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고 재정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일본 정부는 재정건전화를 위해 내년 4월 소비세를 인상하겠다고 국제사회와 약속했지만 세율인상이 경기회복의 발목을 잡을 경우 아베노믹스는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아베 정권이 철저한 구조개혁을 성공시키지 못할 경우 아베노믹스에 대한 실망감이 경제에 더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구조개혁은 노동유연화 등 규제완화, 법인세 인하 등을 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아베노믹스의 실패는 세계 경제에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킬 수 있다"며 "일본이 성장을 이끌고 부채위기를 피하려면 경제구조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구본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물가를 마이너스 기조에서 탈피시킨 것만으로도 아베노믹스를 평가해줄 만하지만 내수시장에 대한 비전이나 확신이 없다면 기업투자나 개인소비가 지속적으로 늘기는 어렵다"며 "아베노믹스는 절반의 성공에 그칠 확률이 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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