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범 정부 차원에서 '학교폭력근절종합대책'을 내놓은 지 3달. 하지만 학교 폭력은 여전히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교육과학부가 신뢰도가 낮은 학교폭력 실태조사 자료를 공개하는 등 실책을 계속하는 사이, 정부 대책에 허점이 많다는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웃 일본과 중국도 집단 따돌림, 청소년 자살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지난 2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ㆍ중ㆍ일 학교폭력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가나하라 ??스케(56) 나가사키 웨슬리언대 교수, 양정(46) 중국 상하이 공강초급중학교장, 와타나베 테츠야(59) 지바현립 나가레야마남부중학교장과 만나 26일 각국의 청소년 문제 해결 방식과 우리나라 내놓은 학교폭력근절종합대책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15년간 스쿨 카운셀러로 활동해 온 가나하라 교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카운셀링 기법의 하나인 '사회적 스킬 훈련(SST)를 이용해 학생들에게 언어ㆍ예절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상대방이 이야기하고 있으면 반드시 상대방 눈을 보도록 하고, 윗사람이라면 반드시 존칭어를 사용하게 한다. 욕이나 비속어를 사용하는 학생은 '천천히'말하게 지도하며 비속어나 욕설을 어떤 말로 바꾸면 좋을지도 알려준다.
가나하라 교수는 "보통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지도하는데 그 정도면 굉장히 많이 개선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학교폭력 피해 유형 1위로 꼽힌 욕설, 협박 등 언어폭력 문제를 해결하자는 움직임이 있다. 하지만 보여주기 식이라는 지적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최근 워크숍을 열어 학생언어문화 개선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포스터 제작이나 캠페인 활동 등에 머물렀다.
우리 정부는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정서ㆍ행동 발달 검사를 모든 학생에게 실시, 위기 학생을 센터나 병원과 연결해 주는 프로그램을 계획 중이다. 이 같은 프로그램은 양정 교장이 재직하는 공강초급중학교가 있는 상하이 양푸구의 모든 학교에서 이미 실시되고 있다.
양정 교장은 "상담교사가 일주일에 일정 횟수 이상 상담하고 기록을 남기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문제가 있는 학생일수록 지속적인 관심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학생들의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활용하도록 중학교 체육활동시간을 8시간에서 12시간으로 50%늘린 바 있다. 하지만 학교현장에는 잘 작용되지 않고 있다. 한 중학교 교장은 "입시가 우선인 아이들이 체육활동 하란다고 그렇게 하겠느냐"며 "체육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도 열악하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스포츠 활동을 비롯한 클럽 활동이 매우 활성화 돼 있다. 특히 문제학생의 경우 스포츠 클럽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조치한다.
가나하라 교수는 "클럽 활동을 통해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를 얻고, 자신감이 붙으면 더 열심히 활동하는 경우도 많다"면서 "집단 괴롭힘을 하던 학생에게 체육활동을 하도록 권한적이 있다. 그 결과 좋은 성적을 거뒀고, 자신의 적성과 꿈을 가진 건강한 학생이 됐다"고 사례를 소개했다.
중국 전역의 학교에는 학교폭력이나 자살 등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동되는 긴급팀이 있다. 팀원은 주로 교사들이다. 법률 등 전문 분야는 그 분야에서 종사하는 학부모가 참여하기도 한다.
자살 등의 사고가 일어나면 학생들을 현장에서 최소 30~50m 떨어져있게 하라는 세세한 지침이 있을 만큼 위기 상황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체계가 잘 잡혀있다. 양정 교장은 "추가로 일어날 수 있는 위험 요소를 최소로 할 수 있고, 다각화된 시점에서 문제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교과부는 올 2월 교사용 학교폭력 대응 매뉴얼을 배포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추후조치는 아직 없다. 한 중학교교장은 "학교에서 사고가 일어났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정확한 체계가 전무한 상태"라고 말했다.
교과부는 최근 회수율 25%에 불과한 학교폭력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해 큰 논란이 일었다.
일본에서도 1년에 3회 이상 집단 괴롭힘 설문조사를 하지만 결과는 결코 공개하지 않는다. 가나하라교수는 "집단 괴롭힘을 당하고 고민하고 있는 학생을 위해 활용하는 자료이기 때문에 정보 관리를 더 철저히 한다"며 "무조건 공개하는 것 만이 능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학교폭력종합대책에는 학교폭력 가해사실을 생활기록부 기재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중국과 일본 양국의 교육자들은 부정적이었다.
양정 교장은 "학교 폭력에는 학생 개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요인도 있는데 이를 학생 개인 기록에 남기는 것은 교육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가나하라 교수는 "이런 기록을 남기면 오히려 더 나쁘게 행동하는 학생도 있다"고 말했다.
한ㆍ중ㆍ일 청소년 문제의 근본적 원인으로 지적되는 '과도한 학습 부담'문제 해결 방안으로는 중국은'맞춤형 교육'을 일본은 '인성 교육 강화'를 꼽았다.
양정 교장은 "모든 학생들을 같은 잣대로 평가하고 대해서는 안 된다"며 "우리 학교에서는 학생의 수준별로 다른 숙제를 주는 등 '맞춤형 교육'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와타나베 교장은 "최근 일본에서도 입시위주 교육보다는 학교와 가정에서 예절과 인성을 가르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우리 학교도 이러한 분위기에 맞춰 인성ㆍ예절교육을 강화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