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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의 위세가 예전만 못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전 세계 경제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의 경제구조는 민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70% 수준에 이를 정도로 소비에 집중돼 있다. 결국 전 세계 경제의 14~15% 정도를 미국의 가계가 책임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미국의 가계소비가 갖는 무게감은 남다르다. 2000년대에 중국이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면서 고성장을 누릴 수 있었던 것도 사실 미국 경제가 호황을 누리면서 세계의 소비시장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미국 소비는 급격하게 침체됐다. 부동산과 금융자산 가격이 급락했고 고용이 크게 악화하면서 가계의 소비심리도 위축됐다. 미국의 소비에 비상등이 켜지면서 글로벌 생산 위축과 경기 침체가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미국의 가계소비는 글로벌 경제의 이정표가 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양적완화'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그 효과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를 놓고 보면 연준의 양적완화 정책은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 양적완화가 종료된 지난해 미국 경제지표를 되돌아보면 극심한 한파의 영향을 받았던 1·4분기를 제외하고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였다. 특히 내구재 소비 증가세가 두드러졌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2014년 2·4분기와 3·4분기 중 미국 전체 가계소비는 각각 전분기 대비 2.5%, 3.2% 증가했다. 과거 증가율에 비하면 그리 높은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내구재소비는 같은 기간에 각각 14.1%, 9.2% 증가했다. 가장 대표적인 내구재인 자동차가 19.1%, 자동차 부품 소비가 11.2% 증가한 것에 힘입은 것이다.
자동차 같은 내구재는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필수재가 아니기 때문에 경기가 위축되면 가장 먼저 소비가 줄어든다. 그런 내구재를 다시 적극적으로 구매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미국 가계가 체감하는 경기 상황이 상당히 호전됐음을 의미한다.
내구재의 또 다른 특징은 가격이 비싸다는 점이다. 따라서 내구재 구매에는 대부분의 경우에 할부나 리스를 동반한다. 가계의 입장에서 보면 몇 개월, 길게는 몇년 동안 고정적으로 비용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이를 반대로 말하면 가계가 최소 그 기간 동안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고정적인 수입이 발생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가계소득은 크게 임금과 자산소득(금융·부동산 등 자산으로부터 발생하는 수입)으로 나눌 수 있다. 내구재 소비에는 향후 고용시장과 금융시장, 그리고 부동산 시장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이 전제되어야 한다.
실제 미국의 고용시장은 꾸준히 호전되고 있다. 금융위기 직후 10%를 넘나들었던 실업률은 2014년 11월 5.8%까지 떨어졌고, 고용비율도 서서히 증가하는 추세다. 부동산 시장은 지난 2013년 연말부터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정책)'이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개선세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미국 가계소득의 18% 정도를 차지하는 정부이전소득도 미국 정부 부채 문제가 완화되면서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또 미국 가계소비를 크게 위축될만한 요소도 눈에 띄지 않는다.
이렇듯 미국 경제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소비가 정상 궤도로 들어서면서 연준은 기준금리를 인상할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대체로 올해 중반에는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할 것으로 보고 있고, 국내 증권업계도 오는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준이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연준이 금리를 인상한다고 해서 미국 가계의 소비가 크게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 미국 가계의 소비 심리를 감안하면 현재 '제로 금리' 수준에서 소폭 상승한다고 해도 예금에 돈이 몰릴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다만 금리 부담으로 인해 기업투자는 기존에 비해 다소 둔화될 수 있다. 하지만 수요(소비)가 꾸준히 유지되는 상황인 만큼 투자 조정도 급격하게 일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연준의 정책 선회가 글로벌 금융시장에 큰 위험(리스크) 요인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리스크를 단지 리스크로만 받아들이면 투자 기회를 찾을 수 없다.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 정책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금리 인상에 나서는 근본적인 이유를 다시 한 번 곱씹어 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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