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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7월 31일] '배부른 소리'가 배 불린다

부지런한 개미와 게으른 베짱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솝 우화'는 언제나 나를 비웃거나 질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래도 나는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땀을 뻘뻘 흘리며 먹이를 모으는 개미보다 짙은 나무숲속에서 '바이올린'으로 비유되는 울음소리를 드높이는 베짱이에 더 가까우리라는 자격지심 때문이었다. 친구들이 자격증을 따고 취업준비를 할 때 나는 창작을 위한 경험을 한답시고 하릴없이 뒷골목을 떠돌았다. 처세술을 가르치는 책과 외국어교재를 곰파는 사람들로 가득 찬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시집과 소설책을 읽었다. 돈이 행복 절대조건은 아니야 모두가 돈과 인맥과 성공을 이야기할 때 여전히 사랑과 고독과 죽음을 말했다. 개미처럼 겨우내 먹을거리를 차곡차곡 쌓지는 못했지만 베짱이도 나름대로 분주했다. 실로 베짱이도 이슬만 따 먹고 살 수는 없기에 밥벌이의 고단함을 여실히 느끼며 좌충우돌 고군분투했다. 다만 문제는 그 노동이 당장의 이윤을 결과물로 내지 못하기에 지극히 비현실적이며 몽상적이며 '배부른 소리'로 치부되었다는 것이다. 무엇과도 경쟁할 수 없는 절대권력인 돈과 물신(物神)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돈을 칭송하고 숭배하지 않는 이야기는 무조건 '배부른 소리'로 치부되곤 했다. "인간은 왜 사는가"라고 물으면 하루하루가 바쁜 사람에게는 배부른 소리, "행복의 조건은 오로지 돈인가"라고 물어도 갚아야 할 대출금이 잔뜩 쌓인 사람에게는 배부른 소리, "사랑은 인간을 구원할 것인가" "역사는 과연 진보하는가" "죽음을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라고 물으면 먹고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배부른 소리 좀 그만하라는 지청구를 들어야 했다. 그 '배부른 소리'들이 바로 인문학과 문학예술의 궁극적인 질문이자 과제이기에 상아탑에서조차 인문학 관련 학과들이 하나둘 사라져갔고 문학과 예술은 단순한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그래도 문학이 아닌 다른 삶을 한번도 꿈꿔보지 않은 베짱이에게는 변치 않는 믿음이 있었다. 인간의 본질과 삶을 다루는 인문학과 예술은 아무러한 푸대접과 냉대를 받을지라도 결코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 기실 인문학과 예술은 범접할 수 없이 고상하고 턱없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어쩌면 로또 당첨의 기대나 대박의 꿈보다도 더 우리 일생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재벌총수도 말단직원도 무위도식배도 지하도의 노숙인도 나고 살고 죽는 삶의 사이클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그러하기에 언젠가 한번쯤은-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제한된 선택밖에 남지 않은 인생의 후반기에 너무 늦게-이 '배부른 소리'를 스스로에게 읊조리는 날이 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보다 더 '트렌디'하고 화수분처럼 무궁무진한 '콘텐츠'가 어디 있는가. 또한 이제는 더 이상 먹을거리를 차곡차곡 쌓으면서 만족하는 개미의 시대가 아니다. 어깨가 빠져라 등짐을 지는 대신 컨베이어시스템을 사용할 줄 알게 된 개미들은 지난해 겨울 굶어 죽은 베짱이야말로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존재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존의 방식으로 학습된 본능만을 좇아 땅 위를 발발 기어 다니기보다는 잎에서 잎으로, 나무에서 나무로 날아 이동하는 베짱이의 도약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돈 안되는 문학이 창의력 키워 인문학은 고민하는 힘을 기르게 하고, 문학은 인간을 이해하며 삶을 성찰하게 한다. 풍부한 상상력과 창의력은 그 시시풍덩한 '배부른 소리'들에서 비롯된다. 평균수명이 무한 확장되면서 질적으로 높은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를 이해하는 속에서 새로운 소비의 영역을 확장한다. 그러니까 정말로 배부른 소리가 배를 불리는, 아이러니하고도 재미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눈앞에 당장 보이는 효과를 기대하며 시와 소설을 읽을 수는 없다. 하지만 문학을 통해 다른 삶과 시대를 경험하고 상상하며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긴긴 겨우내 추위를 견디고 봄을 기다리는 힘이 된다. 한국의 경제신문으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서울경제신문의 창간 50주년을 축하하며 문학과 인문학이 경제와 만나 아름다운 삶의 꽃을 활짝 틔우는 세상을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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