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9년 4월28일 오후 당시 현대 명예회장이었던 고(故) 정주영 회장은 현대자동차가 최초로 선보이는 초대형 승용차 '에쿠스' 신차발표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총개발비 5,200억원을 들여 탄생한 '에쿠스'는 구입과 동시에 '현대차 VIP클럽회원'으로 가입될 만큼 국내 최고위층이 타는 차로 꼽혔다. 벤츠나 BMW를 직접 겨냥할 만큼 국내 자동차 업계를 대표하는 획기적인 모델이었다. 그 당시 4,500㏄ 에쿠스 리무진 가격은 7,950만원에 달했다.
하지만 16년이 흐른 지금 정·관·재계 고위층 인사가 타는 차로 이미지가 굳어진 것이 '에쿠스'의 가장 큰 패인으로 돌아왔다.
현대차가 심사숙고 끝에 '에쿠스' 이름을 포기하는 대신 '제네시스 브랜드'로 최고급 세단을 통합시키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달 판매량이 100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에쿠스 시대가 끝났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흘러나왔다.
현대차를 대표하는 플래그십 세단 '에쿠스'는 의미가 각별하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역시 1999년과 2009년 두 차례 모두 직접 출시 행사에 참석했을 만큼 애착이 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2009년 3월 에쿠스 2세대 출시 행사에서는 "에쿠스는 그동안 현대자동차가 꾸준히 축적해온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철저한 품질관리로 개발한 최고급 대표 차종"이라며 "제네시스가 금년도에 북미 올해의 차로 선정돼 호평을 받고 있는 데 이어 현대자동차는 신형 에쿠스를 앞세워 국내뿐 아니라 해외시장에도 본격 진출해 유럽의 고급 명차들과 당당하게 경쟁하며 글로벌 명차 브랜드로 한 단계 더 비상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대차의 선택은 제네시스를 도요타의 럭셔리 브랜드 '렉서스'처럼 키우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올 10월께 출시될 '신형 에쿠스'의 바뀐 이름도 제네시스의 명맥을 이어가는 '제네시스 EQ900'이 유력하다. 법인 판매가 집중적으로 몰리는 올 하반기로 판매 시점을 조율 중이다.
지난해 말 '에쿠스' 전체 판매 가운데 중 법인 판매 비중이 80%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나 연초보다 연말에 출시했을 때 판매 효과가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제네시스로 편입된 '에쿠스'를 포함해 '제네시스 브랜드'를 더욱 확장한다. 현재 '제네시스 브랜드'는 3,300㏄와 3,800㏄로 구성돼 있으며 문짝이 세 개로 이뤄진 제네시스 쿠페가 포함돼 있다. 여기에 5,000㏄의 에쿠스급이 추가되며 2017년께 2,000㏄ 제네시스 차량 출시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여기에 현대차디자인센터를 중심으로 제네시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개발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기아자동차도 제네시스 같은 고급 브랜드를 만드는 작업을 검토하고 있다. 2017년 출시 예정인 'K9'부터 새로운 브랜드 이름을 붙일 계획이다. 현대·기아차 모두가 새롭게 고급화 전략을 짜는 것은 수입차의 공세가 거세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의 한 관계자는 "높아진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브랜드 이미지 탓에 저평가되고 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며 "'렉서스'처럼 고급 브랜드를 만들어 다양한 고객층을 공략하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한편 새롭게 출시될 현대차의 최고급 세단에는 국내 최초로 '고속도로 주행지원 시스템(HDA)'이 장착된다. 'HDA'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적용되는 자율주행 기술이다. 내비게이션에 입력한 장소로 이동하는 동안 앞차와의 거리는 물론 차선 변경까지 스스로 주행할 수 있는 최첨단 차량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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