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이동건(35)씨는 요즘 깊은 한숨을 쉬는 때가 많아졌다. 지난 2010년 1월부터 월 40만원씩 개인연금을 붓기 시작했지만 득달같이 오르는 물가 때문에 연금수익률이 뚝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총 20년간 불입하면 만 55세부터 10년 동안 매달 165만원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은 벌써 잊은 지 오래다. 당장 지난해 물가상승률을 가정해 계산기를 다시 두드려보니 165만원은 현재가치로 환산할 때 75만원으로 떨어졌다. 국민연금은 물가를 반영해 수령액이 늘어나지만 개인연금은 물가가 오른 만큼 실질적인 수령금액이 줄어든다.
노후준비에 '인플레이션 비상등'이 켜졌다.
미국 경기둔화와 유럽 재정위기로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이 가중되면서 주식과 채권 수익률이 떨어지는 가운데 고공비행을 이어가는 물가마저 수익률을 갉아먹는 복병으로 등장했다.
우선 노후대비용으로 가입한 연금상품의 수익률이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며 사실상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개인 근로자나 회사가 자산운용 방법을 결정하는 퇴직연금 일부 상품에서는 수익률 자체가 마이너스를 나타내고 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손실폭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가입자가 1,122만명에 달하는 만능통장(주택청약종합저축)도 연 4.5%의 금리를 제공하지만 지난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이 4.0%에 달해 제반 이자비용을 제외하면 역시 마이너스 수익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노후준비의 최대 적(敵)이 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ㆍ퇴직연금ㆍ개인연금 등 연금 3종 세트 중 개인ㆍ퇴직연금은 물가상승분을 수익률에 반영하지 않는다. 지난해 채권형 연금신탁 수익률은 기껏해야 3% 중반으로 물가상승률(4.0%)에도 미치지 못했다.
사정이 이러니 보험사 등 연금운용 회사들은 안전한 국공채에서 벗어나 부실채권 등 신용등급이 낮은 자산에 투자하고 나설 정도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물가상승률을 넘는 수익률을 제시하려면 자산운용을 공격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우리나라 물가는 지난 30년 동안 243% 올랐다. 연평균 4.2%다. 같은 금액으로 살 수 있는 구매력은 3분의1로 떨어졌다. 이 같은 추세를 고려하면 연금상품 수익률이 '4.2%'를 따라잡지 못할 경우 노후준비는 환상에 불과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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