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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서거] 현대정치사 거목 '역사속으로'

폐렴증세 입원 37일만에…파란만장한 '85년 생애' 끝내 마감


SetSectionName(); [DJ 서거] 현대사 거목 '역사속으로' 폐렴증세 입원 37일만에…파란만장한 '86년 생애' 끝내 마감 구동본 기자 dbkoo@sed.co.kr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우리나라 현대정치사의 거목인 김대중(86) 전 대통령이 18일 서거했다. 광복 직후부터 시작돼 60여년에 걸친 그의 정치역정은 한국의 민주화과정과 궤를 같이했다. 4ㆍ19혁명 후의 짧은 영광을 뒤로 하고 5ㆍ16 이후 암울했던 18년간의 군부독재 시절 내내 그는 민주화의 상징이었고 희망이었다. 또 그토록 짧았던 지난 1980년 민주화의 봄 이후 이어진 군인통치에 온몸으로 항거, 결국 6ㆍ10항쟁을 이끌어내 권위주의 통치시대를 마감한 주역이었다. 그러나 한국 정치는 그의 서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질적인 지역과 계층 간 갈등의 골을 메우지 못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함에 따라 1960년대부터 김영삼ㆍ김대중ㆍ김종필 세 사람이 현실정치의 중심에서 영향력을 행사해온 이른바 `3김 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김 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인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이날 오후 신촌 연대 세브란스병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 전 대통령이 18일 오후1시43분 서거하셨다"며 "부인 이희호 여사와 김홍일ㆍ홍업ㆍ홍걸 3형제, 며느리 등 가족과 측근들이 임종했다"고 발표했다. 김 전 대통령은 7월13일 폐렴으로 세브란스병원에 입원,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받고 증세가 호전돼 22일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그러나 하루 뒤 폐색전증이 발병하면서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채 치료를 받아왔으며 입원 37일 만에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갔다. 세브란스병원 측에 따르면 최종적인 사망원인은 '다발성장기부전에 따른 호흡장애'. 정부는 이 여사 등 유족들의 뜻을 최대한 존중해 장례절차를 정하기로 했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국민장이 유력하다. 간이 빈소가 마련된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는 이날 오후 김 전 대통령의 '영원한 라이벌'로 알려진 김영삼 전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한 각계 인사와 시민들의 조문이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김 전 대통령은 1924년 1월6일 전남 신안에서 가난한 농부였던 아버지 김운식(金雲植)씨와 어머니 장수금(張守錦)씨의 4남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나 목포 북교국민학교와 5년제인 목포상고를 졸업한 뒤 목포일보 사장을 지냈으며 민주당 대변인이었던 1963년 목포에서 6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된 뒤 7, 8, 13, 14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나섰으나 당시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박정희 대통령에게 석패했다. 이후 1987ㆍ1992년 대선에서 연거푸 낙선했으나 1997년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 전 대통령은 1972년 유신체제 등장 후 1987년 6월항쟁으로 민주화가 이뤄지기 전까지 군부독재정권이 반체제 인사로 분류해 잇따라 투옥, 수감되고 해외 망명생활을 하는 등 숱한 고초를 겪었다. 1980년 5월17일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조치 때 학생 소요사태를 배후 조종한 혐의로 구속된 뒤 광주민주화운동을 사전 지시했다는 내란음모 혐의로 그해 7월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듬해 1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으나 국제사회의 압력 덕분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그는 1982년 형집행 정지로 석방돼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1985년 12대 총선을 앞두고 귀국, 김영삼 전 대통령과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으로서 민주화항쟁을 이끌었다. 1987년 직선제로 치러진 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야권 후보 단일화에 실패한 뒤 평화민주당을 창당하고 대선에 출마했으나 노태우 민정당 후보와 김영삼 통일민주당 후보에 이어 3위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1992년 14대 대선에서는 김영삼 민자당 후보에게 패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했으나 1995년 이를 번복하고 국민회의를 창당하면서 네번째 대권 도전에 나섰다. 그는 이듬해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의 야권공조를 앞세워 1997년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건국 이후 첫 수평적 정권교체를 실현했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 투쟁과 인권신장ㆍ통일운동에 평생을 헌신해 독재종식과 민주주의 정착, 한반도 평화조성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대통령 재임 기간에 6ㆍ25전쟁 이후 최대 국난이었던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최고의 정보화 사회를 구현했으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광복 이후 첫 남북 정상회담을 가져 남북 화해협력 시대를 열었고 그 공로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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