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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캐시카우 오늘과 내일] 3-3. 진화하는 기업만 산다

2002년 9월 중순 스웨덴 조선산업의 본고장인 말뫼. 이곳은 세계 최초로 LNG선을 건조한 100여년 역사의 코컴스조선소가 자리한 명실상부한 유럽 조선산업의 본고장이다. 특히 코컴스가 보유한 세계 최대 규모의 1,500톤급 골리앗크레인은 말뫼의 상징물로도 유명했다. 이 명물이 이날 부품 하나씩 하나씩 해체돼 배로 옮겨졌다. 글로벌 경쟁력을 상실한 코컴스가 도산하면서 자신들의 자부심이기도 한 자랑거리를 한국의 현대중공업에 매각했기 때문이다. 이를 바라보는 스웨덴 코컴스 조선소 관계자들과 시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이제는 잊혀져 가는 조선 강국의 역사를 되새겼다. 현지 언론들도 일제히 “말뫼가 울었다”라는 제목 아래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질의 경쟁시대를 열자= 말뫼의 골리앗크레인에서 보듯 역사가 주는 가장 큰 교훈은 `변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것이다. 2003년 현재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한국의 조선산업도 마찬가지다. 화물선, 유조선 같은 탱커는 물론 컨테이너선박 등 상선에서 세계시장 점유율이 최고 80%에 달하고 있다지만 앞으로 10년, 20년 뒤에도 지금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장담하기 어렵다. 한국 조선업계는 특히 90년대 중반 새로 출범한 현대삼호중공업(옛 한라중공업)을 제외할 경우 노동자들의 평균연령이 40세를 넘어서고 일부 조선소의 경우 심지어 45세에 육박한다. 사실상 노동력에 의한 대량 생산구조를 5~10년 이상 지속시키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른바 “한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두터운 고급 숙련 노동자층 ▲풍부한 시공 및 설계 경험 ▲차세대 기술을 향한 투자여력 확보 등 현재 한국이 조금만 속도를 내도 여타 경쟁상대와 격차를 저만치 넓힐 수 있는 경쟁력 요소는 무수히 많다. 전문가들은 “기후가 바뀌고 토양이 변하면 체질이나 몸집을 개선시켜야 한다”며 “국내 업계가 그동안 양의 경쟁에 주력해왔다면 여기서 얻어진 에너지를 바탕으로 앞으로는 질의 경쟁에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우세 영역은 격차를 넓혀라= 대형 선박은 하나 하나의 쇳덩어리 방들을 만든 후 이를 한꺼번에 묶어주고 이렇게 묶인 덩어리들을 다시 더 큰 덩어리로 묶어주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이 때 절대 필수적인 작업이 용접과 도장. 사람의 손끝이 경쟁력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조선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현재 첨단장비와 더불어 사람들의 손끝 하나하나에 의존하는 영역들에서 나오고 있다”며 “기존 한국의 우세 영역에 대해서는 보다 격차를 벌리는 노력을 펼쳐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업계는 이와 관련, 자동화ㆍ로봇화 등을 통해 경쟁력을 지속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고등기술연구원에 로봇연구소를 설립, 근로자들이 꺼리는 어려운 작업을 로봇으로 대체할 방침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10년간 약 300억원의 연구자금을 투입해 용접, 도장 부문 로봇을 개발할 것”이라면서 “일부 공정의 경우 로봇으로 처리가 최대 80%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형 크루즈`를 만들어라= 유럽 조선업계는 한국, 일본에게 세계 신조선 시장의 주도권을 내줬지만 `바다위의 호텔`로 불리는 크루즈선박 부문의 90%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여전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고유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척당 가격도 평균 4억달러를 웃돌 정도로 고부가가치 품목이다. 한국과 일본이 아무리 산더미같이 커다란 컨테이너선이나, 벌크선, 유조선을 만들어 팔아도 매출기준으로 세계 조선시장의 절반을 넘기기 힘든 이유다. 전문가들은 “크루즈엔 한 나라 한 시대의 문화적 깊이와 품격이 깔려있다”며 “한국이 선박건조 기술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고 있다지만 예술품으로 승화해야 하는 크루즈에선 설계, 시공, 인테리어 모든 부문이 걸음마 단계”라고 말했다. 지금 당장은 불가능한 영역이라는 말이다. 특히 수요 기반도 대부분이 유럽 과 미주에 집중돼 있어 지구 반대편으로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기는 역부족일 수 있다. 문제는 한국에서만이 공급할 수 있는 새로운 기호, 새로운 미학을 구성할 수 있느냐는 점. 업계 한 관계자는 “세계 무대에서 통할 수 있는 한국형 크루즈 개발을 포기한다는 것은 세계 조선시장의 절반을 포기하는 것과 같은 의미”라며 “정부 차원의 꾸준한 지원과 국내 수요 증진을 통한 경험 축적 등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국내업체 새 개척분야 국내 조선업체들이 21세기 신개척지로 주목하는 영역은 어디인가. 가장 두드러진 움직임은 영하 163도(섭씨)의 초저온을 견뎌내야 하는 LNG 화물탱크 개발부문에서 나타난다. 현대중공업은 현재 멤브레인과 모스 등 2개 선형에 대해 14만㎥급을 개발 성공한데 이어 18만5,000㎥~25만㎥급으로 연구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 회사는 또 미국 에너씨사와 신개념 천연가스선인 CNG선(압축천연가스 운반선)에 대한 디자인을 공동 개발하고 있다. CNG선은 기존 LNG(액화천연가스)선이 천연가스를 극저온 상태에서 액화시켜 운반했던 것과 달리 상온에서 기체상태의 천연가스를 1/290로 압축해 운반하는 고도의 정밀기술이 요구되는 선박이다. 척당 무려 2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차세대 LNG 해양구조물 등 초고부가 선박도 국내기업들이 눈길을 떼지않고 있는 품목이다. 삼성중공업은 세계 최초로 해양에서 천연가스를 뽑아 바로 선박에 적재할 수 있는 LNG FPSO(해양구조물)을 개발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LNG 개발방식의 개념을 뒤바꾸는 혁신적인 제품으로 해양에서 바로 가스를 채취해 선박에 적재할 수 있는 것이다. 척당 가격도 20억달러(2조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최근 셸 등 세계적인 에너지 업체들이 수주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매입이 현실화할 경우 선박의 새로운 역사를 쓰는 기념비적 사건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두 빼앗긴 日의 교훈 50년대 이후 40년 넘게 세계 조선시장을 장악한 일본. 최근 한국에 선두자리를 넘겨준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것은 만년 1위라는 우월적 지위에 자만한 것이다. 일본 기업들은 선박을 효율적으로 만들어 팔기 위해 선종별로 선박을 표준화한 다음 정형화된 설계도면에 따라 일관라인에서 자동차를 생산해내듯 배를 만드는 방식을 채택했다. 고객인 선주들은 나름대로 선박에 대한 옵션을 설계에 반영하고 싶었으나 아쉬울 게 없는 일본 조선사들은 `효율과 원칙`만을 고집했다. 시장과 소비자 기호가 변하고 있었지만 이를 따라가지 못한 것은 당연한 수순. 결과적으로 고객의 요구에 소홀해졌으며 설계능력과 설계인력의 질은 제자리걸음만 했다. 이에 반해 한국 조선업체들은 선주들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하는 `맞춤식 조선`방식을 밀어붙였다. 신조선시장에서 한국이 일본을 밀어내기 시작한 가장 큰 요인이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조선 전문가들은 “일본 정부가 조선산업이 세계1위를 완전히 굳힌 70년대에 설비에 대한 총량규제를 나서면서 덩치 키우기에도 등한시했다”면서 “유럽의 경우보다 낫지만 한국 조선기업에 비해 규모의 경제에 밀린 것도 1위자리를 한국에 넘겨준 요인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이 밖에 일본내 조선공학과가 2개에 불과해 `젊은 피`를 제때 수혈하지 못하면서 일본 조선산업 근로자들의 평균연령은 45~50세에 달한다는 점도 성장 한계를 앞당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다른 대기업 같으면 사실상 퇴직을 앞두고 있는 고연령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생존을 위한 변신 노력 21세기 새로운 토양에 적응하기 위해 이들 역시 우리 못지않게 뼈를 깎는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주된 흐름은 각 국가별로 장점이 있는 분야에 대해 특기를 살리는 것. 동시에 정보기술(IT)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미국의 마리테크= 90년대초 클린턴 정부 출범 이후 조선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정부 차원의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94년부터 정보기술 경쟁력을 기반으로 한 `마리테크(MARITECH)`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약 4억달러 이상이 투여된 프로젝트에는 시스템 테크놀로지 분야가 예산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국방부가 전격적으로 참여해 미래형 조선산업에 필요한 기술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른바 군사-기업-연구소 등으로 국가 차원의 경쟁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유럽(EU)의 마리스=유럽국가들 역시 정보화에 온힘을 쏟고 있다. 유럽연합은 95년 `MARIS(MAritime Information Society)`라는 신 조선산업 개념을 도입, ▲해상교통레갬? ▲해양안전 ▲해양자원 개발과 보전 ▲선박렷瞞?관련 산업 정보화 ▲해양 관광, 교육 등 바다와 관련된 전 분야의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른바 영국,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갈로 이어지는 중세 해양 강국의 명성을 되찾겠다는 야심이 전 유럽을 기반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미래산업 만들기=70년대 30년 이상 세계 1위 조선국의 위상을 지키고 있는 일본은 기술력과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조선산업을 미래형 산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국가적 노력에 나서고 있다. 일본은 80년대 중반부터 컴퓨터로 생산과 선박제조작업을 일관화하는 `CIMS(Computer Intergrated Manufacturing for Shipbuilding)`구축을 완성한데 이어 96년부터는 생산기술을 넘어 지식공유를 목표로 한 업그레이드 CIM 작업이 완료단계에 와 있다. <최인철기자 michel@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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