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EU FTA 비준 급하다]<br>여여-여야 갈등 남아 한미FTA에도 악영향<br>원산지규정 까다로워 中企 대응시간도 줘야
지난해 10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한국과 유럽연합(EU) 정상회담에서 한ㆍEU 자유무역협정(FTA) 서명이 이뤄진 순간 많은 주변국들은 부러움의 눈길을 보냈다. 가까운 일본은 한국이 인도에 이어 먼저 유럽시장을 선점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냈으며 한국시장 진출 확대를 노리는 미국은 협정문에 밑줄을 치며 자국의 이익을 셈했다.
하지만 한ㆍEU FTA 협정문이 번역 문제로 제자리에 머무르면서 오히려 불안과 우려의 눈빛이 우리 업계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자칫 어렵게 얻은 결과물을 제 발로 걷어찰 수 있기 때문이다.
한ㆍEU FTA는 항상 한미 FTA와 비교된다. 협상 과정에서부터 양측은 패리티(동등) 문제를 수시로 제기했다. 만약 EU와의 FTA 처리가 속도를 내지 못할 경우 한미 FTA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대경제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미국도 곧 의회에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제출할 것으로 보여 우리도 서둘러 움직여야 한다"며 "통상에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닌 이상 이제는 반대할 만한 이유가 없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EU, 미국은 서둘러 가는데=한ㆍEU FTA와 한미 FTA 처리에 대해서는 여당 내부적으로도, 또 여야 간 갈등이 남아 있는 상태다. 일부에서는 일괄처리를 주장하면서 한미 FTA의 경우 기존 협상안과 추가 협상안을 동시에 다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기에 한ㆍEU FTA 논의가 늦어질 경우 한미 FTA에 대한 협의도 미뤄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미국과의 FTA는 추가 협상을 거쳤기 때문에 여러 논의 사항이나 다양한 형태의 의견을 받을 것이 많다.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급하게 비준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로 인해 논의할 시간 자체가 줄어들면 여당도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한미 FTA의 경우 정해진 기한이 없지만 상반기 내에 마무리 지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미국 역시 한걸음 한걸음 내부 절차를 진행해나가고 있으며 법안 심의가 쉽지 않은 정기국회까지 가게 되면 차일피일 미뤄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내년으로 넘어갈 경우 총선ㆍ대선 등 우리 측 정치 일정이 FTA 동의안을 처리하기에 만만치 않다.
익명의 한 통상전문가는 "우리가 쉽지 않은 상황인데 여당도 여당이지만 야당도 정권을 잡았던 시기에 협상을 시작했던 만큼 서둘러 합의를 이끌어내야 우리 업계에 실질적인 이익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소기업들 대응시간 필요=번역문 오류로 수차례 국무회의를 다시 거쳐 국회에 제출하는 동안 잠정발효 시점이 채 100일도 남지 않게 됐다. 늦어도 4월 국회에서 법안이 처리돼야 이와 관련된 11개 입법 사항들도 마무리될 수 있다.
특히 한ㆍEU FTA의 경우 원산지 규정이 까다롭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반 대기업들의 경우 대응하는 게 어렵지 않지만 중소기업들이 혜택을 보기 위해서는 사전에 기술적인 준비를 하고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측면에서도 한ㆍEU FTA가 서둘러 처리돼야 할 필요성이 높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연구조정실장도 "협정문을 바로잡았으니 더 이상 이것으로 문제를 삼는 것은 좋지 않다"며 "시간을 끌어 한미 FTA 논의를 자연스럽게 지연시키는 목적도 다분해보인다"고 말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비준동의안이 처리되면 그 다음 국내법과 충돌이 되는 부분은 국내법을 고치는 개정작업이 필요하다"며 "오는 5월에는 국회가 열리지 않고 6월 국회에서 법률안 개정작업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시간이 넉넉한 편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공은 국회에=EU와 미국이 각각 한국과의 FTA에 대한 의회 비준에 속도를 내면서 엄밀히 말하면 '공은 우리 국회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부분보다 지금부터는 정치적 프로세스(절차)인 것이다.
통상전문가들은 미국이 7월 한ㆍEU FTA가 발효되면 자국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을 염려해 한ㆍEU FTA 비준동의안부터라도 우선 처리하면 대내외적으로 긍정적인 효과와 명분을 동시에 가져올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익을 위해서는 국회에서 소모적인 논쟁 없이 서둘러 움직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 본부장은 "우리 기업들이 큰 이웃시장에 진출을 확대할 전략들을 짜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까지 생각한다면 한ㆍEU FTA가 7월1일에 발효될 수 있도록 (비준동의안)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됐으면 하는 게 우리의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