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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사회공헌기금과 나눔정신
입력2004-05-27 16:55:39
수정
2004.05.27 16:55:39
권영준<경희대 경영학과 교수>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자기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두 여인이 솔로몬 왕에게 심판을 요구하고 있다. 왕은 신하에게 이르되 산 아이를 칼로 쳐서 반으로 갈라 두 여인에게 반씩 나눠주라 하는데 이때 한 여인이 아들을 상대방 여인에게 주고 아이를 죽이지 말라 한다. 왕은 바로 그 여인이 아이의 친모이니 아이를 그에게 주라 명령하는 명판결을 한다.
강요는 선행정신 어긋나
지난주 민주노총 산하 4개 자동차 노조가 회사별로 순이익의 5%를 출연해 사회공헌기금을 만들 것을 요구하고 노동부 장관도 이를 공론화시키겠다고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회공헌기금은 말 그대로 대기업들이 주주 이외에 공급자ㆍ종업원ㆍ소비자ㆍ지역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존경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 스스로 조성하는 기금이다. 공익사업을 통해 기업에 대한 우호감을 갖게 하는 것이 기업발전은 물론 기업생존을 위한 필요조건이 됐기 때문에 선진국에서 기업의 사회공헌기금은 일반화된 현상이다. 실제 미국 포천지가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10대 기업의 주가수익률이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500 기업의 평균 2배를 넘는다는 조사결과가 있고 국내에서도 사회적 책임과 사회봉사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기업의 실적이 훨씬 좋기 때문에 사회공헌기금의 취지는 매우 좋은 것이다.
그러나 기업이 존경받기 위해 사회공헌 활동을 벌이고 기금을 조성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기업 스스로 자발적으로 할 때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해 관계자의 강요에 의해 억지로 하는 것은 선행이 아니며 그렇게 해서 기업에 대한 호감이 높아질 리도 없다. 특히 아이를 사랑한다고 아이를 반으로 쪼개서 나눌 것을 강요하는 여인이 진정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님은 솔로몬 왕의 판결에서도 나왔듯이 기업에 이윤의 일부를 강제로 떼어내서 비정규직 기금 등으로 사용하자고 하는 것은 진정 자기 기업을 사랑하는 발상은 아닌 듯싶다. 왜냐하면 강요에 의한 기금조성은 주주에게는 준조세로 인식돼 투자를 기피하게 될 것이고 이는 자동차회사의 자본조달을 어렵게 하거나 하청업체에 비용을 전가시켜 자동차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4대 자동차 노조가 정말로 회사의 발전과 산업을 사랑하고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는 솔로몬의 판결에 나오는 여인처럼 사랑하는 아들을 죽이지 않기 하게 위해 자기 권리를 포기할 수 있는 살신성인의 자세가 요구된다. 즉, 기업에 사회공헌기금을 요구하기에 앞서 현대자동차 조합비 중에서 다만 몇 억원만이라도 노조가 자발적으로 헌금한다면 국민들은 노조의 헌신에 박수를 칠 것이고 이는 나아가 경영진과 주주들을 부끄럽게 해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이들 자동차 노조는 중소기업 중심으로 돼 있는 금속노조에 가입해 노조 산하의 162개 영세기업들에 재정적으로는 물론 정책적으로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나눔정신으로 건강한 산별노조를 만들어야 한다.
노조도 지혜로운 판단을
마지막으로 외환위기 이후 극심한 양극화의 여파가 노동시장에도 몰아쳐 대기업 노조와 중소하청기업 노조, 정규직과 비정규직, 기성근로자와 청년실업자 등의 양극화에 대해 사회통합과 병행발전 차원에서 대기업 노조는 과도한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하고 양보교섭을 해야 한다. 사회공헌기금을 관철시키고자 하더라도 노조의 양보교섭 없이 사용자의 일방적 양보만 요구한다면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 낼 수 없을 것이다.
일본경제의 장기침체인 소위 “잃어버린 10년”의 주원인에 대한 최근 세계적 석학사들의 분석에 의하면 버블붕괴 이후 금융부실을 적기에 정리하지 못한 것보다는 오히려 산업구조의 경직성에 따른 생산성 저하와 이로 인한 투자부진 및 내수침체, 주5일 근무제의 부작용 등이 빚은 구조적 문제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직된 노동시장 구조가 일본식 장기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를 가볍게 넘길 수는 없다. 한국 대기업 노조의 지혜로운 판단이 어느 때 보다도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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