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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청와대-기아 통화록 단독입수] "청와대 압력 있었다"
입력1999-01-29 00:00:00
수정
1999.01.29 00:00:00
지난 97년 기아그룹에 부도유예협약이 적용된 직후 청와대가 기아측에 대해 주행시험장·판매망 등을 삼성과 공동으로 사용할 경우 산업합리화 기업으로 지정해주겠다고 제시했던 것으로 밝혀졌다.특히 청와대 관계자는 『삼성이 기아를 인수하면 더 잘할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며 기아와 삼성의 시설 공동이용 제안은 경제팀의 의견이라면서 잘 검토하라고 압력을 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29일 서울경제신문이 단독 입수한 「97년 7월23일 청와대와 기아 고위간부 통화록」에 따르면 당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기아측이 내놓은 자구책이 구태의연하다』며 『기아의 시설을 타 자동차회사와 공동 사용하는 안을 내면 산업합리화 업종 지정도 가능하고 정부지급 보증도 해주겠다』고 회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삼성이나 쌍용·대우가 이같은 사안을 요청하고 기아가 이에 응할 용의가 있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산업합리화(업종 지정)의 모티브가 될 수도 있고 설득력도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또 『이렇게 하는 것이 (기아의) 현 문제점(정부의 경영진 불신, 중복과잉, 자금난)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의견수렴을 해보니 경제인이나 비경제인들의 얘기 중에는 삼성이 기아를 인수하면 더 잘할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고 전해 청와대 고위층에서도 당시 삼성의 기아인수를 심도있게 검토했음을 시사했다.
이 통화록은 기아가 부도유예협약 적용대상으로 지정(97년 7월15일)된 지 일주일 만인 97년 7월23일 청와대와 기아자동차 고위 관계자간에 이뤄진 것으로 통화내용은 당시 기아측 임원이 직접 작성해 그동안 비밀리에 보관해온 것이다. 당시에는 기아측이 삼성음모설을 집중 제기하고 있었고 기아의 처리방향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던 시기다.
또 삼성자동차는 판매망 구축과 자동변속기 확보 등에 애를 먹고 있었고 기아부도 직후에는 삼성배후설이 떠돌아 단기간 내 기아를 인수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돌고 있었다.
이 통화에서 기아 관계자가 일본 소니의 예를 들며 재벌기업의 업종전문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하자 청와대 관계자는 『삼성이 이미 진출해 있다. 업체간 최적의 콤비네이션을 이루어 앞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또 기아측이 『업종전문화, 소유분산, 전문경영인 체제 등 기아는 정부의 산업정책을 잘 지켜왔다』고 지적하자 『산업정책이 어디 있는가. 정부는 산업정책이 없다』고 질타했다.
자신이 통상산업부(현 산업자원부) 출신이라고 밝힌 이 청와대 관계자는 『(이런 제의가) 경제팀 의견이다. 윗분들도 자금지원하고 나면 자구책이 유야무야된다는 얘기를 한다』며 잘 검토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김선홍(金善弘) 전 기아그룹 회장은 지난 28일 경제청문회에서 기아흔들기가 기아부도의 원인이라며 『부도 직후 삼성과 함께 주행시험장을 공동으로 사용하라는 고위층의 압박이 있었다』고 밝혔는데 이 통화록은 이를 입증하는 것이다. 【정승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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