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서 펀드 장기투자의 대표주자를 꼽으라고 하면 흔히들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을 말한다. 이 회사 간판상품인 ‘한국밸류10년투자펀드’는 말 그대로 10년을 내다보고 투자하는 펀드로, 3년을 채우기 전에 중도해지 하면 환매수수료를 물어야 하는 유일한 펀드상품이다. 일반적으로 다른 펀드가 3~6개월만 투자기간을 묶어놓는 것에 비하면 꽤 엄격한 기준인 셈이다. 하지만 펀드 장기투자를 상징하는 ‘한국밸류10년투자펀드’도 최근 불어 닥친 환매열풍을 피하지 못하면서 펀드설정액이 1조원 아래로 뚝 떨어졌다. 투자기간 3년을 넘긴 투자자들이 이탈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펀드수탁고는 9,100억원. 두 달 전 1조원이 깨진 데 이어 9,000억원 선도 과연 지킬 수 있을까 불안한 모습이다.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펀드를 환매하는 까닭이 이해도 된다. 2006년 4월 처음 만들어진 이 펀드의 가입자들은 3년을 채운 2009년 4월, 최소한의 투자기간을 채웠지만 예상치 못했던 글로벌 금융위기로 큰 손실을 입었다. 또 한 해를 더 기다려 올해 투자 4년차를 맞았지만, 자문형 랩을 중심으로 일부 대형주만 수익률 게임을 벌이는 시장에서 철저히 소외됐다. 장기투자에 대해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증권업계는 이에 대해 “개인투자자들에게 장기투자에 대한 부담감은 여전히 크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펀드 장기투자는 마치 구구단처럼 개인투자자들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재테크 수단으로 강조돼왔다. 하지만 정작 펀드투자자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이론과의 온도 차가 여전하다. 우리나라의 적립식펀드 평균 투자기간이 23개월로 2년도 채 못 채우는 이유다. 그래서 더욱 아쉬운 게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다. 한 해 투자성과를 정리하고 새해계획을 세우는 시기가 됐지만, 펀드 장기투자로의 유인책은 사실상 거의 없다. 가장 훌륭한 노후대책은 스스로 준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고령사회 대책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지만, 정작 경제적으로 따뜻한 노후를 책임질 확실한 지렛대인 주식시장과 펀드에 대한 관심과 고민은 아쉽기만 하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