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대학로 예술극장 ‘나무와 물’에서 개막한 뮤지컬 ‘슈샤인보이’. 유명 극단이나 제작사에 몸 담은 적이 없는 공학도 출신의 유경호 씨가 연출을 맡아 공연계에 데뷔했다. 공연계 배경이 없는 까닭에 무엇보다 재원 조달이 어려웠다. 유 씨에게 도움의 손길을 준 이들은 대학 선후배와 친구들. 이들은 제작비의 4분의 1 정도 되는 약 2,500만 원의 펀드를 조성해 공연에 투자했다. 최근 개미들의 소극장 공연 투자가 늘고 있다. 사모펀드, 창업투자사 등 금융계의 공연 투자자들이 대형 공연에만 관심을 보여 소극장 공연으로 자금이 흘러 들어오지 않으면서 생겨난 일. 현재까지는 수익을 거두겠다는 투자 목적보다는 문화 후원의 성격이 강하지만 일부 공연은 곧 투자 수익도 분배할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개미투자자와 소극장 공연의 매칭이 서로 윈윈하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소극장에 투자하는 개미들= 지난 3~8월 공연한 소극장 뮤지컬 ‘빨래’는 개미투자자들의 힘으로 무대에 다시 오를 수 있었다. 2005년 초연한 뒤 호평을 받았지만 약 7억 8,000만 원 가량되는 제작비를 조달할 길이 없어 제작사는 재공연할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초연 당시 공연을 관람했던 한 한의사는 소식을 전해 듣고 공연에 투자를 제안했다. 여기에 한 법무법인 역시 투자에 동참하면서 제작비 대부분이 마련되자 재공연을 할 수 있었던 것. 예비 관객들이 친목계 형식으로 지원하는 형태의 투자도 등장했다. 극단 ‘신명나게’에서 선보인 ‘신나게 공연볼 계(契)’는 월 4,000씩 총 4만 8,000원을 1년 동안 할부로 내면 2만 원짜리 공연 티켓 4장을 받을 수 있는 방식. 계를 선보인 지 2달 정도 지난 현재 약 80명의 친목 회원들이 약 200장의 티켓을 미리 구매해줬다. 제작사는 공연을 보기 전에 미리 지급한 곗돈을 바탕으로 차기 작품의 제작비를 일부 충당했다. ◇개미투자와 소극장 공연, 윈윈이 가능한 매칭= 공연 제작사에서 개미 투자자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이유는 재원 조달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창업투자사, 공연투자 펀드 등은 현재 600억 원 이상 조성돼 있지만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대형 공연이 아니면 투자하길 꺼린다. 국내 한 투신운용사의 관계자는 “10억 원 미만의 투자는 수고와 노력에 비해 성과가 미미하다”며 “뮤지컬 ‘캣츠’ 등 제작비 100억 원이 넘는 대형 공연에 치우칠 수 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소극장 공연의 재원은 결국 제작자가 사재를 털어 마련하는 등 스스로 해결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인맥을 통해 알게 된 지인들을 중심으로 개미 투자자들이 형성된 것. 현재 개미들은 투자보다는 후원의 목적으로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뮤지컬 ‘빨래’ 등 수익이 발생한 일부 공연을 중심으로 개미들에 대한 수익 배분 계획이 세워졌다. 멀리 내다보면 개미투자자들이 소극장 공연의 재원이 되고, 개미투자자도 공연을 통해 수익을 얻게 되는 선순환 고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김성수 문화평론가는 이와 관련 “소규모라는 점에서 개미투자자와 소극장 공연의 매칭은 바람직하다”며 “기업과 금융 기관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소극장 공연의 재원 마련에 대한 유일한 대안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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