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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3월 25일] '발굴 조사기간 단축'이 합리적?
입력2008-03-24 18:03:55
수정
2008.03.24 18:03:55
[기자의 눈/3월 25일] '발굴 조사기간 단축'이 합리적?
조상인 기자
이건무 문화재청장이 지난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올해 주요 업무 계획을 밝혔다. 문화재 보호를 위한 방재 시스템의 강화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문화재 행정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대목. 이 청장은 산업단지 조성과 공장설립 등 국토개발에 맞춰 문화재도 보호하고 경제도 살리는 ‘합리적’ 절충안으로 매장문화재에 대한 지표조사 및 협의기간을 현행 50일에서 30일로 단축하겠다고 공언했다. 공사에 따른 문화재 조사 인ㆍ허가 단계도 대폭 줄이겠다고 밝혔다.
문화재 보존에 앞장서야 할 문화재청이 건설업 위주의 경제논리에 휘둘리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현행 발굴ㆍ조사 기간도 넉넉한 편이 아닌데 여기서 더 단축될 경우 원활한 조사는 더욱 힘들어진다. 한 고고학계의 관계자는 “합리화는 빛 좋은 허울일 뿐 실상은 빨리빨리 문화재 조사를 끝내버리고 공사에 착수하겠다는 사업자 편의주의”라고 강하게 성토했다. 고고학계에서는 대운하사업 추진으로 다량의 매장문화재 조사가 발생할 것을 염두에 둔 개정안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문화재청장은 지표조사 기간단축으로 인한 부실조사 우려에 대해 기간 축소를 만회할 수 있도록 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립문화재연구소를 활용한 교육프로그램 운영이 과연 전문 발굴 인력을 충분히 생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금도 국내 고고학계는 수요에 비해 공급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고고학과가 개설된 대학만 하더라도 서울에는 서울대 하나뿐이고 지방 일부대학까지 합쳐 연간 250명 안팎의 졸업생이 배출된다. 이 중 실제 발굴현장에 뛰어드는 인력이 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이 청장도 모를 리 없다. 게다가 인력부족 때문에 법적으로 제한되는 중복발굴(한 조사기관이 여러 곳을 발굴하는 것)도 공공연히 자행되는 현 상황에서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인력을 운영할지 의문이다.
고고학회 회장이던 이 청장이 대운하 터 사전발굴을 위한 지표조사 완화방침에 항의하는 성명을 낸 지 한달 만에 문화재청장에 취임하고 대운하 건설에 협조할 것이라고 소신을 뒤집은 것은 자리에 맞게 처신하는 것이라며 눈감아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과 함께 땅속에 묻힌, 보존하고 관리해야 할 우리 문화재가 빛도 채 보지 못하고 건물 밑에 깔릴 것은 두고 볼 수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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