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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악어'.. 자본숭배 질타하는 세태풍자소설
입력1999-03-28 00:00:00
수정
1999.03.28 00:00:00
1860년 1월 13일 제정 러시아 페테르스부르크에서 기상천외한 사건이 벌어졌다. 덕망 있어 보이는 중년 신사 이반 마트베이치가 매력적인 부인 엘레나 이바노브나와 친구 세미온 세미오노비치가 보는 앞에서 악어에게 먹혀버린 것이다. 그러나 더욱 기묘한 것은 악어의 뱃속에 들어간 이반은 멀쩡하게 살아 밖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때부터 당시 러시아에서 보수와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위선이 한꺼풀씩 벗겨져 나가는데…도스토예프스키(1821~1881)가 1865년에 발표한 소설 「악어」의 내용이다. 물론 이 소설은 발표 당시 즉시 판매금지조치 되었다. 지독히 노골적인 사회비판을 담았기 때문이었다. 발표된지 130년이 된 소설 「악어」가 강주헌씨의 번역으로 도서출판 느낌에서 출간됐다.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등으로 세계 문학사에 우뚝 선 도스토예프스키가 중년의 나이에 발표한 일종의 우화격인 「악어」는 당시 후진국이었던 러시아에 밀어닥친 서구만능주의 즉 자본만능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자 정체성을 상실한 지식인들에 대한 준열한 꾸짓음을 담았다.
악어는 원래 독일인 상인의 장사수단이었다. 그러나 악어가 사람을 집어삼켰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인은 절대 악어의 배를 가를 수 없다고 주장하는 비정함을 보인다. 뿐만 아니라 이반의 직장 상사는 이제 막 외국자본이 러시아에 들어오는 판에 악어의 뱃속에까지 들어가 자본수입을 방해한 이반은 이단자라고 비판한다. 아내는 이혼을 생각하고, 사람들은 구름처럼 모여들어 인간을 집어삼킨 악어를 구경한다.
뿐만 아니라 악어의 뱃속에서 둥지를 튼 이반은 이제야 세상의 주목을 끌게되었다면서 악어의 배에서 나오는 것을 한사코 거부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악어의 배 안에서 통나무처럼 누어있는 신세이면서도 어쩌면 러시아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화제의 인물이 될지 모른다는 사실에 기뻐 어쩔줄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심지어 『인류를 위한 완벽한 천년시대를 구상해 낼 수 있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다음날 도하 신문들은 외국자본을 상징하는 악어를 학대하기 위해 그 비좁은 뱃속에 들어간 한 사내를 비판하는 기사를 대문짝하게 싣는다.
결국 소설 「악어」를 통해 도스토예프스키는 덜 떨어진 근대화이론으로 자본만능을 외치던 당대의 지식인·관료들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가하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정체성을 상실한 외세추종자들을 비판하고 있는 셈인데, 130년이 지난 오늘날 세계화 지상주의가 판치는 우리나라에서 이 소설이 갖는 의미를 가볍게 치부할수만은 없을 것 같다. 【이용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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