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당동의 한 횟집. 이곳은 인근의 다른 식당보다 싼 가격으로 승부하겠다며 가게 외벽에 메뉴판을 대문짝만 하게 걸어놓았었다. 그런데 최근 메뉴판의 표시가격을 다 지웠다. 하루가 다르게 널뛰는 공급가격 때문에 당분간은 상황에 맞춰 적당한 값을 받기로 했다. 주인인 김모씨는 "가격표시를 지웠다며 처음에는 손님들이 타박했지만 요즘은 오히려 이심전심 이해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서비스 요금은 올 상반기 물가의 시한폭탄이다. 농축수산물 가격이 오른 만큼 판매가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식당들이 서서히 가격상승을 준비하고 있다. 일부 식당은 주메뉴 가격을 소폭 올리는 대신 공급가가 오르지 않은 술 가격을 1,000~2,000원씩 올리는 '꼼수'를 부리기도 한다. 외식비를 제외한 기타 개인서비스 요금도 줄줄이 오를 태세다. 정부가 통제 가능한 각급 학교 납입금은 묶어뒀지만 아파트 관리비, 학원비, 이ㆍ미용료 등은 이미 상당 부분 가격을 올렸거나 상반기 중 상승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휴대폰 요금의 경우 정부는 지난 2월 전년 동월비 3.1% 내렸다고 발표했지만 최근 스마트폰 보급이 크게 늘어난 데 따라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비싼 요금제를 선택하는 것을 감안하면 서민들의 지갑사정은 날로 어려워지는 셈이다. 문제는 개인서비스 요금은 한번 오르면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다는 특성에 있다. 이른바 '메뉴 비용(menu cost)'이다. 정부 예측대로 농축수산물 가격 등이 하반기로 갈수록 안정된다고 해도 개인서비스 요금이 물가불안을 야기해 가계살림을 팍팍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개인서비스 요금이 소비자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큰 만큼 상승세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면서도 "행정안전부 등을 중심으로 지방자치단체와 각급 협회 등에 협조를 당부하는 것 말고는 실질적인 수단이 없다"고 토로했다. 농산물 및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지수가 날로 뛰는 것도 부담이다. 근원물가는 일시적인 외부 충격에 따라 물가변동이 심한 품목을 제외한 장기적으로 기조적인 물가다. 그만큼 물가를 잡기 어렵다는 얘기다. 지난해 2월 1.9% 상승세에 그쳤던 근원물가 상승률은 2월 3.1%까지 올랐다. 근원물가의 상승은 결국 수요 부문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자극해 이른바 물가상승의 도미노 현상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재정부는 최근 한 심포지엄에서 "최근의 물가 불안은 공급 측면과 수요 측면의 물가압력이 반영된 결과"라며 "우리 물가구조는 시장경쟁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하고 하방경직적이며 변동성이 큰 후진적 특징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점 때문에 한국은행도 근원물가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시하고 나섰다. 한은은 29일 내놓은 금통위 의사록에서 "오는 4ㆍ4분기에 근원 인플레이션율이 소비자물가상승률을 넘어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석유와 농산물 등 공급 부분에서 발생한 물가의 상승 흐름이 기조적 흐름으로 굳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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