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토콘드리아와 Y염색체 연구로 드러난 현존 인류 공통 조상의 기원지는 아프리카다. 즉 지리상의 영역 확장으로 보자면 인류의 선조들은 구대륙에서 신대륙으로 차츰 거주지를 개척했음을 알 수 있고 오늘날에는 지구에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이다. 광개토대왕이나 칭기즈칸 등 잘 알려진 통치자나 콜럼버스ㆍ마젤란 같은 탐험가들도 있지만 이름 모를 수많은 선조들의 도전이 삶의 영역을 넓혀왔음이 틀림없다. 이제는 지구를 떠나 달 표면에 발을 내디뎠을 뿐 아니라 가까운 화성에도 유인탐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유럽ㆍ미국 등 대규모 투자 러시
비단 지리상의 개척뿐만이 아니다. 과학의 세계에서도 위대한 탐험은 계속되고 있다. 20세기 물리학ㆍ화학의 눈부신 발전은 인류의 의식주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왓슨과 크릭의 DNA 구조 발견 이후 현대 생물학자들의 야망은 인간 게놈 프로젝트 완료로 이어졌고 이제는 인류의 건강과 생명 연장에 대한 염원이 어떻게 실현될지 가늠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숨가쁜 확장과 발전이 생명과학에서 이뤄지고 있다. 지리상이 됐든 과학의 세계가 됐든 인류의 탐험정신이 경외스럽기도 하고 어쩌면 이것이 인류의 DNA에 각인된 본성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이제 우리는 무얼 탐험할 수 있을까. 개척과 확장이 가능한 곳이 과연 남아 있을까. 틈새 공략이나 융합은 어떨까. 새로운 곳을 찾는 과정에서 피로감이 느껴지고 때로는 경쟁을 넘어 창의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필자의 경험의 한계로 많은 분야를 논하기는 어렵지만 하드웨어적으로 한 곳은 온전히 미지의 세계로 남았다고 말할 수 있다. 바로 인간의 뇌다. 1,000억 신경세포와 그 1,000배 이상의 시냅스 연결로 이뤄진 소우주. 압도적이다. 동시에 호기심과 탐험 정신을 불러일으킨다.
21세기에는 과거와 차원이 다른, 정보기술(IT)과 바이오기술(BT) 등 첨단과학기술을 활용한 뇌 연구가 가능하다. 게다가 심리학과 교육학ㆍ영상의학ㆍ뇌공학ㆍ인공지능 등 관련된 분야도 많다. 조금 비약하자면 뇌 작동 방식에 관한 탐구는 철학과 문학ㆍ종교 등의 영역에 다다르는 날도 오게 될 것이다. 뇌 연구로 인한 부가가치 또한 막대하다. 소위 말하는 미래 성장동력이다. 뇌 질환 치료 시장만도 이미 연간 100조원 수준을 넘어섰고 사회 직간접 경제적 파급까지 고려한다면 2,000조원 수준으로 예측하기도 한다.
공교롭게도 지난 한 달 새 유럽연합(EU)과 미국은 각각 뇌 연구 프로젝트에 10년간 1조9,000억원과 3조2,000억원 규모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마치 20년 전 인간 게놈 프로젝트 출범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그간의 뇌 연구 투자와 비교해 파격적인 규모이다. 하지만 앞으로 막대한 부가가치를 고려하면 현실적인 수준이다. 그리고 모든 분야를 담고 있지는 않다. 각기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가상 뇌 구현, 개개의 신경세포 활동 측정을 위한 영상기술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 프로젝트의 구체적 향방에 대한 자국 내 토론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부러운 점은 도전을 향해 먼저 힘찬 발길을 내디뎠다는 점이다.
우리도 성장동력에 적극 지원을
우리 정부도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한국뇌연구원 설립과 기초과학연구원의 중추적 부서인 뇌연구단, 2차 뇌연구촉진법안 등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의 뇌 연구 투자 규모는 지난 몇 년간 정체 상태이다. 세계적으로도 미개척 분야인 만큼 정부 지원에 과감성이 발휘된다면 더 많은 젊은이들이 뇌를 향한 탐험에 동참하고 관련 산업 지형도를 우리 손으로 그릴 날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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