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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 앓고 있다] 1부:위기의 세대 <1>조국 등지는 유럽 젊은이들

"투잡 뛰어도 생계 막막"… 돈벌이 찾아 세계 떠도는 난민 전락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정규직을 구하지 못해 임시직을 전전하는 '1,000유로 세대' 이탈리아 청년 마시모 마니그라소씨(28)가 휴대폰으로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유로존 3위 경제대국 伊 청년 10명중 6명이 백수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이후 100만명 해외로 엑소더스

부정·부패에 재정도 구멍… 실업대란 벗어날 해법 없어 국가 성장기반 붕괴 우려


#. 이탈리아 밀라노의 대형 쇼핑몰 스마트폰 매장에서 일하는 마시모 마니그라소(28)씨는 일주일에 이틀 정도만 근무한다. 연말 쇼핑 시즌과 같은 성수기일 때는 주 3~4일씩 일하기도 하지만 비수기에는 하루나 이틀 근무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는 여기에서 나오는 수입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저녁 시간에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LG 같은 대기업에 정규직으로 취직하고 싶지만 그런 좋은 일자리는 아예 없습니다. 여자 친구가 있어도 결혼이나 아기 생각은 아예 안 해요."

#. 이탈리아 북부 도시 베로나 출신의 경제학도 니콜라 치비에로(28)씨는 일자리를 찾아 한국까지 왔다. 한국어 학원에 다니는 그는 신촌에서 월 28만원짜리 고시원에 살다가 최근 화장실을 따로 쓸 수 있는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35만원짜리 원룸으로 옮겼다고 기뻐했다. "고향에서는 무급 인턴도 좋으니 출근만 시켜달라고 졸라도 써주는 회사가 없었습니다. 취직할 수 있다는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아 친구가 있는 한국에 오게 됐어요." 한국 무역회사에서 일하는 게 그의 꿈이다.

고실업이 유럽의 청년들을 해외로 내몰고 있다. 일자리 찾기에 지친 청년들은 저임금의 질 낮은 임시직을 전전하거나 조국을 떠나 '일자리 난민'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에서도 경기회복세가 더딘 남부 유럽의 상황은 심각하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3위의 경제대국인 이탈리아 청년들의 실태는 유럽이 안고 있는 청년 문제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일자리 '엑소더스'=이탈리아 정부 통계에 따르면 15~34세의 취업률은 지난 2008년 50.4%에서 지난해 40.2%까지 떨어졌다. 청년 10명 중 6명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공업과 상업이 발달한 북부 도시에서 만난 청년들은 상대적으로 여건이 나은 편이었다. 북부지방의 취업률은 50.1%인 데 비해 중부지방은 43.7%, 남부는 27.6%에 불과하다. 마니그라소씨 역시 시칠리아 인근이 고향이다.

자국에서는 취직의 희망이 보이지 않자 이탈리아 젊은이들은 무더기로 해외로 떠나고 있다. 이탈리아 통계청의 2014년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한 해 동안 해외 이민자는 6만8,000명에 달했으며 이 가운데 15~34세 청년은 2만6,000명이었다. 이는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8년보다 1만명 늘어난 것이다. 지난 5년간 9만4,000명의 이탈리아 젊은이들이 해외로 떠났다. 이들은 향한 곳은 독일·영국·스위스·미국 등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공식 통계보다 훨씬 더 많은 청년들이 엑소더스 행렬에 동참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경제연구소 '센시스'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0만명의 젊은이들이 해외로 떠났다는 조사 결과를 공개한 바 있다. 로마 루이스대의 페데리코 니글리아 경제학과 교수는 "청년실업은 단기적으로는 소비위축이라는 결과를 낳는다"며 "그러나 진짜 심각한 문제는 10년 후, 20년 후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인적 자본이 국내에서 축적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성장 기반이 유실된 이탈리아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판 잃어버린 20년=밀라노를 방문한 기자가 청년취업지원센터를 취재하고 싶다고 요청하자 현지 관계자들이 난색을 표했다. 이탈리아에는 기업들의 구인정보를 공식적으로 제공하고 취업지원을 하는 창구가 아예 없기 때문이다. 공채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 이탈리아는 연줄에 따라 일자리를 찾아가는 구조다.

1994년부터 2011년까지 20년 가까이 이탈리아를 이끌었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 정책에만 집착해 정치·경제 등 사회 전 분야에서 개혁을 이루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동시장도 마찬가지다. 정규직은 과도하게 보호하고 임시직은 열악한 환경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정원준 KOTRA 밀라노무역관 관장은 "이탈리아에서는 회사가 망하기 전에는 정규직 해고가 불가능하다"며 "경제 상황이 불확실한 가운데 기업들도 정규직 채용을 꺼리고 신규 채용은 임시직으로만 채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젊은 총리인 마테오 렌치가 임시직에 대한 계약조건을 개선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기업과 노조의 반발에 부딪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포퓰리즘 정책의 후유증으로 정부 재정도 구멍이 난 지 오래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은 133%로 그리스에 이어 유럽연합(EU) 내 2위다. 재정의 상당 부분이 경기호황기에 대폭 늘린 복지재원과 비대한 공공 부문 근로자의 임금에 쓰인다. 또 GDP의 15.4%에 해당하는 예산이 노년층 연금 보조금으로 지급된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평균 7.8%) 국가 중 단연 1위다. 주세페 치바티(39) 이탈리아 의회 의원은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계층 간 격차가 확대되고 있는 이탈리아에서 청년들이 가장 큰 희생양이 되고 있다"며 "무엇보다 지배계층이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극단적 정치 성향으로 표출된 좌절=실업과 미래의 국가부채까지 떠안은 청년들의 불만은 유럽 정치불안의 배경이 되고 있다. 최근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극좌 정당들이 약진한 원인도 젊은 층의 분노에 있다. 니글리아 교수는 "청년의 위기는 프랑스·헝가리·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에서 반정치적인 성향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0일 밀라노의 폴리테크닉대 캠퍼스에서 만난 두 청년은 지난 이탈리아 총선에서 정치개혁을 기치로 내건 신생 정당인 오성운동을 지지했으나 그들의 포퓰리즘적 행태에 실망해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다른 소수 정당을 지지했다고 말했다. 이날 졸업시험을 마친 이들은 이후가 막막하다고 했다. "청년들이 기존 시스템에 화가 많이 나 있습니다. 정치를 바꾸려고 새로운 정치세력에 표를 줬지만 그들도 역시 실망스러웠습니다. 현실이 바뀌려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더 늦기 전에 해외로 나가는 것밖에는 길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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