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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과소비] 5. 정보 천민주의
입력1999-10-21 00:00:00
수정
1999.10.21 00:00:00
이재권 기자
국내 한 인터넷회사의 임원은 최근 사석에서 가시 돋친 독설을 쏟아냈다.「정보화 선진국」이라는 그럴듯한 기치 아래 「양적 팽창」 외에 지금까지 이뤄진게 뭐가 있느냐는 한탄을 그는 그렇게 표시했다.
과거 「근대화」의 기치 아래 앞만 보고 내달려온 개발지상주의가 결국 환경파괴, 가치관의 혼돈을 수반하며 천민 자본주의를 낳은 것과 다름없는 기형과 왜곡이 디지털 정보사회에서도 반복되고 있다는 경고였다.
그의 비판대로, 정보화로 가는 우리의 「디지털 자화상」은 그리 밝지 않다. 서울경제는 「디지털 과소비」시리즈를 끝내며 천리안·유니텔·넷츠고·채널아이와 함께 네티즌 1만3,098명을 대상으로 정보통신 사용실태를 조사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전화, 휴대폰, 삐삐, PC통신, PC방 사용료 등 온갖 통신요금을 다 합쳐서 한달에 10만원 이상 내는 가구가 46.3%에 달했다. 20만원 이상 지출하는 집도 15.4%로 적지 않았다.
홈페이지를 만들어 놓고 활용하는 비율은 25%에 불과해 폐가(廢家)가 된 홈페이지는 4개중 3개에 달했다. 또 자신이 만든 홈페이지에 올린 정보를 수시로 갱신하는 경우는 3명중 1명 꼴도 안됐다. 이들중 64.4%는 현재 5개인 이동전화회사가 「너무 많다」고 응답했다.
이같은 숫자 뒤에 숨은 실제 우리의 디지털 풍속도는 더더욱 기가 막히다.
어느 집은 이동전화 패밀리서비스에 가입해 놓고선 집안에서도 가족들끼리 휴대폰으로만 대화한다. 아침에 부모가 아이들 깨울 때도 휴대폰으로 한다. 과소비 행태가 극심해진 나머지 의식과 행동에도 영향을 끼쳐 가족간의 접촉까지 허물어뜨리는 경우다.
어느 여대생은 광주에서 서울까지 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5시간 동안 한번도 끊지 않고 애인과 휴대폰으로 통화하는 예가 목격되기도 했다. PC방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E-메일 주소가 10개가 넘었다. 쓸 데 없이 너무 많지 않은가고 말하자 그는 대뜸 정색하며 『뭐 어떠냐』고 반문했다.
이용자 자신은 물론, 그 누구도 제어하지 않고 막가는 소비문화,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일그러진 디지털 자화상」이다.
1,400만대의 장롱 속 휴대폰에 소비된 돈이 5조6,000억원, 장롱 속 휴대폰 양산의 주범인 이동전화회사들의 보조금 지급액이 지난 3년여간 4조9,331억원, 이들이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감당하기 위해 끌어쓴 부채가 총 6조9,793억원, 이같은 부실에 때문에 내려가지 않는 이동전화 요금…
요즘 떠오르는 인터넷 시장도 이동전화의 전철을 그대로 따라가는 형국이다.
중소기업 처지에서 몇억원의 상금을 미끼로 회원을 유치하는 등 과당 경쟁을 답습한다. 그 결과로 서버의 상당 부분을 폐가 홈페이지가 잡아먹어 비효율과 낭비를 낳는 자충수를 두고 있다. 이런 풍토에선 특히 기술력 하나로 버티려는 건강한 벤처기업들이 자라나기 어렵다.
정신과 전문의 김종주 박사(반포신경정신과 원장)는 『모방과 과시욕에서 앞다퉈 정보통신수단을 소유하려다 보니 미처 건전한 소비문화가 자리잡을 틈이 없었다』고 진단한다. 金박사는 『우리의 과소비문화는 기업의 무분별한 상업주의가 가장 큰 원인을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정보통신기업들의 의식은 어떤가. 정부가 차세대 이동통신 IMT-2000 사업자를 주파수 경매방식으로 뽑기로 하자 한 이동전화회사 관계자는 『경매에 반대한다』면서도 『그래도 그렇게 된다면 1조원이든, 2조원이 들든 어떻게 해서라도 딸 것』이라고 말했다. 막대한 댓가를 치른 만큼 본전을 뽑기 위한 업체들의 경쟁은 상상을 초월할 게 뻔하다. 그 비용은 그대로 요금에 전가된다.
기업들이 그처럼 「이리의 얼굴」을 하게 되는데는 정부도 한 몫 한다. 신규 사업자 선정, 1,000만명 E-메일 갖기운동, 인터넷PC 보급 등 양떼기식 정책을 쏟아내지만 「문화」에 대한 감각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우리 국민들의 디지털 이용문화가 어떻게 돼야 하는가 하는 「당위」와 「모럴」의 문제에 우리 관료들은 애써 못본 척 한다. 『「정보화 선진국」만 부르짖기 전에 정보화 선진국의 잣대가 뭔지부터 정립하라』고 한 전문가는 충고한다.
아무리 새 밀레니엄이 「디지털」을 화두로 한다지만 우리의 디지털 소비문화, 이대론 안된다.
이재권기자JAYLE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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