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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경제'와 우리의 분수

뉴욕타임스는 지난 70년대말 한국경제를 「아코디언 경제」로 지칭한 바 있다.소리는 요란하나 그 속은 텅 비어 있는 악기로서 조작하면 쉽게 부풀었다가 쉽게 찌그러드는 악기에 한국경제를 비유한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이번에는 놀라운 회복세가 한국경제를 오히려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고 꼬집었다. 뉴욕타임스의 20여년 전 비유나 오늘의 지적은 사실상 동일한 취지에서 이루어진 것으로서 한국경제가 갖고 있는 냄비적 속성의 고질적 병폐를 지적한 것으로 보아야 옳다. 특히 최근 지적한 내용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경제전망에 관한 지나치게 낙관적인 분위기는 국민들의 위기감을 상실케 하고 국회의원 선거를 의식함으로써 구조조정이 늦춰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국회의원 선거를 의식한 경제운용이 구조조정을 저해하고 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당초 예상을 두배 이상 웃도는 빠른 회복속도로 말미암아 경제에 대한 매우 낙관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그로 인해 국민들의 위기의식이 경제회복 속도를 몇배나 능가하는 속도로 상실되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리 경제가 W자형의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으나 그렇게만 돼도 다행이다. 왜냐하면 현재 나타나고 있는 징후를 보아 그보다 더욱 나빠질 가능성도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득증가율을 앞서는 소비지출 증가율, 물량은 늘고 있다고 하나 수출단가 하락으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수출액, 25%의 높은 증가율로 내달리고 있는 수입, 그중에서도 몇백%의 증가율을 나타내고 있는 사치성 소비재 수입, 개미군단들의 무모한 증시난입과 부동산 투기조짐 등 모두가 IMF 사태 이전에 익숙했던 것들이다. 우리 경제의 성장을 제약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국제수지(경상수지)이다. 중동특수와 3저호황의 시기를 제외하면 국내총생산의 수입의존도는 40%에 육박하는 데 비해 수출의존도는 35%에 불과함으로써 우리 경제는 국내총생산의 약 5%에 해당하는 경상수지 적자요인을 구조적으로 안고 있다. 월남특수(66~68년), 중동특수(76~78년), 3저 호황(86~88년)과 엔고호황(94~95년) 등과 같이 외부적 여건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 경제는 자율적으로 경상수지 균형이나 흑자를 달성할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 경제의 실상이다. 부존자원과 기술수준이 빈약한 상태에서 수출의존형 공업화를 추진한 것이 불가피하게 수입의존형 경제구조를 낳은 것이다. 수입의 90%가 원료·부품 및 기계로서 이의 의존도를 줄이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따라서 수출부문에서 어떠한 획기적인 변화가 없는 한 내수 주도의 경제성장은 (90~91년의 경우와 같이) 경상수지를 급격히 악화시킴으로써 (92~93년의 경우와 같이) 곧 장벽에 부딪치게 된다. 여기에다 외부여건이 악화되기라도 한다면 수습하기 어려운 국면으로 떨어질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수출증대와 수입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이겠으나 수출 또한 여의치 못하다면 적자살림을 꾸려가는 방법은 욕심보다 덜 만들고 덜 쓰는 것 외에 묘책이 없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분수가 아닌가.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 400억달러는 분명히 지나친 것이서 지속시킬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1~2년 후의 경상수지 예측을 극히 어렵게 할 정도로 흑자 규모를 급격히 줄여나가도 안된다. 그간의 경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연간 경상수지 흑자를 100억달러 내외에서 안정적으로 유지해나가면서 4~5%의 실질경제성장률에 만족하는 경제사회가 돼야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이미 적정성장률 범위의 상한에 와 있는 것이며 더이상의 욕심은 금물이다. 3% 이내의 물가상승률과 한자리 숫자의 장기금리와 일관성있는 성장률에 이미 와 있는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지적했다고 해서가 아니라 우리 경제의 냄비적 병폐가 시정되지 않는 한 우리가 향유할 수 있는 적정성장률 범위는 계속 낮아지고 좁아지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당초의 예상을 두배 이상 앞지르는 빠른 경제회복 속도는 분명 지난해의 마이너스 6% 성장에 따른 기술적 반등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와 같은 측면이 좀더 분명하고 폭넓게 지적되고 알려져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모두가 환상에서 벗어나 과욕을 자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출의 뒷받침이 없는 성장은 곧 거품이다. 우리 경제의 실상을 직시하고 분수에 맞는 경제활동에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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